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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는 한국 대중문화의 잠재력을 확인시키고 있는 K-콘텐츠에 대한 심층적 연구를 도모합니다. 오늘날 한류는 ‘세계의 지역화’와 ‘지역의 세계화’를 동시에 수렴하는 복잡다단한 ‘글로컬(glocal)’ 현상입니다.

그런데 ‘한류’, ‘K-컬처’, ‘K-콘텐츠’에 대한 대중적 담론은 여전히 문화 패권주의로 귀결되는 과잉의 자부심이나 과장된 긍지를 드러냅니다.

학술의 영역에서도 상상적 도취로 이어지는 점유와 수익의 논리, 산업적 전략과 기획의 문제로 초점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문에 ‘한류’, ‘K-컬처’, ‘K-콘텐츠’에 관한 성찰적인 문화연구는 매우 중요합니다. 연관 연구를 중장기적으로 내실화해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려는 노력도 시대적 요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 대중문화’와 ‘K-컬처’라는 용어가 등가를 이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K-컬처는 한류가 단기적·우발적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확인한 이후의 한국 대중문화입니다. K-컬처는 특정 지역(한국)에서 발흥한 문화콘텐츠와 그것을 둘러싼 세계인의 수용 문화를, 문화 선진국의 시선에서 인준하는 개념에 그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인받고 있는 한국의 문화콘텐츠를 한국인의 입장에서 객관화하려는 시도에 머물지도 않습니다. 학술적 관점에서 보면, K-컬처는 두 가지 시선을 모두 포함하되 분과학문의 경계 내에 갇혀 있던 다양한 연구 주제를 연결하고, 포괄할 때 재구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이를테면 K-컬처는 국경 안팎에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며 주목을 이끌어낸 문화콘텐츠와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연구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국내외 수용 문화의 형성과 확산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도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문화콘텐츠가 포용하고 있는 동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밝히는 과제도 진행되어야 합니다. 수용·확산 지역 구성원의 정서와 욕망, 그로부터 추론되는 해당 사회의 감정구조도 흥미로운 논점을 낳습니다. 문화콘텐츠 관련 제도의 영향과 새로운 정책의 시행, 미디어 및 플랫폼의 분화와 콘텐츠 가치사슬의 변화, 제작-수용 과정에 개입하는 기술의 전환과 융합, 산업 구조의 개편과 문화콘텐츠 비즈니스 모델의 구축도 조명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본 연구소의 학술적 지향은 한류, K-컬처, K-콘텐츠에 대한 문화연구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데 있습니다. 먼저는 유의미한 문화 현상으로 대두된 문화콘텐츠를 통해 우리의 의식과 감정을 탐색하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세계인의 일상을 바꾸고 있는 K-콘텐츠의 문화 혼종성(cultural hybridity)을 파악하고 호혜적 한류 공동체의 가능성을 진단하고자 합니다. 연구와 실천의 방법은 학문 영역 간의 통섭과 융합, 소통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 연구소는 인문적 통찰을 근간에 두되, 현장 지향적인 성과를 내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K-콘텐츠가 안으로 수렴된 초국가적 맥락과 바깥을 향해 발산되는 초국가적 전략 사이의 산물이라는 사실에 유념하면서, 연구 과정과 결과의 국제화에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본 연구소가 창간한 학술지 『스토리콘텐츠』는 지금까지 기술한 한류, K-컬처, K-콘텐츠에 대한 연구를 폭넓게 포괄할 것입니다. 그런데 『스토리콘텐츠』가 지향하는 더욱 특별한 학술적 목표가 있습니다. 스토리를 질료로 기획·창작된 모든 콘텐츠, 곧 ‘스토리콘텐츠’에 대한 전문적·체계적 연구 성과를 모아가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서사와 인간의 관계를 근원적으로 접근한다면, 인간은 두 가지 관점에서 ‘서사적 존재’입니다. 먼저 인간은 호모 내러티쿠스입니다. 우리는 자기 경험을 체계적으로 구조하화기 위해 서사라는 형식을 빌립니다. 외부에서 주어진 정보를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고 타인의 삶에 공감하며 그 내용을 해석하는 순간에도 서사라는 틀이 작동됩니다. 우리는 에피소드로 형태로 자신과 타인의 삶을 엮고, 사건을 질서화하여 받아들입니다. 경험하고, 기억하고, 그 내용을 조직하는 데에 서사는 필수이며, 인간 존재 방식의 관성적 토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편 인간은 호모 나랜스입니다. 우리는 서사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활용하며 살아갑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분화되어온 서사양식들을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지금도 우리 안의 서사충동은 관습화·체계화·예술화·전략화의 길을 찾고 있습니다. 호모 나랜스로서 인간은 인쇄술의 발명, 디지털 혁명과 같은 문명사의 변곡점에 대응하며 서사양식을 갱신해 왔습니다. 점토판이나 파피루스에 새겨진 신화와 서사시에서부터 오늘날 메타버스 콘텐츠나 AR·VR 게임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미디어에 최적화된 스토리텔링 체계를 마련해 왔습니다. 호모 내러티쿠스로서 인간의 정신적 삶이 스토리의 활용과 향유에 관한 호모 나랜스로서의 관습과 문화를 재편해 온 것입니다.

우리가 대중적으로 향유하는 대다수의 문화콘텐츠는 사실상 스토리콘텐츠입니다. 문화콘텐츠의 내용과 형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미디어와 장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는 가장 핵심적인 질료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소설, 연극, 뮤지컬,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각종 방송콘텐츠와 게임, 테마파크, 축제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콘텐츠는 정도 차를 두고 스토리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주목할 대목은 디지털 시대로 진입하면서 스토리콘텐츠의 존재 양식과 문화적 환경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에 따라 스토리콘텐츠에 관한 최근의 연구 경향을 보면, 서사물에 관한 기존의 학술 작업과 공통점만큼이나 차이점이 두드러집니다. 대다수의 스토리콘텐츠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전제로 제작된 후 대중매체를 통해 유통됩니다. 그래서 K-컬처나 K-콘텐츠에 대한 논의와 마찬가지로 유관 제도와 정책에 대한 연구, 미디어와 플랫폼에 대한 연구, 기술 기반과 산업적 관점의 전략과 기획에 대한 연구를 필요로 합니다. 최근에는 IP 비즈니스의 영역, 이를테면 미디어믹스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에 관한 연구 등도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

연관 학술 연구의 장에 나타난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스토리콘텐츠에 대한 내재적 분석과 비평의 관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학술적 비평장의 변화를 요약하면, ‘텍스트 중심 스토리’ 연구만큼이나 ‘콘텍스트 중심 스토리텔링’ 연구가 비등한 상황입니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스토리콘텐츠의 기획·창작 방법이 바뀌고, 유통·확산의 구조와 절차가 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호작용성을 기반으로 제작된 스토리콘텐츠의 경우 사실상 창작과 해석의 주도권이 수용자·향유자에게 이양됩니다. 선형적 스토리와 플롯 연구에서 미디어와 플랫폼에 기반한 비선형적 소통구조에 대한 연구가 점증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대한 오늘날의 연구는 지난 세기에 정형화된 서사학의 틀을 넘어서는 포스트 서사학의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의 도정에서 『스토리콘텐츠』는 스토리콘텐츠 안팎의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면서 새롭게 부상하는 학술적 논점을 가장 순발력있게 풀어내고자 합니다. 인문적 의미와 가치를 찾는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사회의 요구와 산업현장의 수요에 학술적으로 응답하는 장을 열어가고자 합니다.

『스토리콘텐츠』는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한 연구자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인문학의 영역 내에 위치한 서사 연구자들의 연구물을 환영합니다. 더 나아가 서로 연관되는 학문 분야에서, 유사 주제를 다른 방법으로 천착해온 연구자들이 광범위하게 소통하는 장이 되길 소망합니다. 연구자들의 혼이 담긴 학술적 성과를 소중히 품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22년 7월
경희대학교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소장 안숭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