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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3

[이지혜의 컬처칼럼] 정직한 '직조'의 미학, 제1회 교류필름영화제에서 한·일 독립영화의 지형을 읽다.

이지혜(문화평론가) 2026-03-23 르몽드 컬처칼럼 교류필름 정대희 대표와의 인터뷰 한일 독립영화의 동시대적 조우… 거대 담론 대신 '일상의 결'로 연대하다 한일 간의 문화교류는 언제나 특정한 ‘사건’을 동력으로 삼아온 것처럼 보인다. 국교 정상화 기념비나 한류 열풍의 확산, 혹은 정교하게 기획된 외교적 화해의 제스처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교류는 으레 선언적 형식을 띠었고, 그 정당성은 투입된 자본과 행사의 규모로 증명되곤 했다. 그러나 화려한 선언들 사이에서 양국의 동시대 문화가 서로를 얼마나 정직하게 들여다보았는지는 늘 별개의 문제였다. 지난 2월 21일과 22일, 서울 독립영화의 성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제1회 교류필름영화제’는 그 거창한 관성 반대편에 서 있는 시도다. 한국에 단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은 일본 독립 장편영화 6편, 전 상영작 GV(관객과의 대화), 그리고 공적 자원 없이 시민들의 텀블벅 크라우드펀딩만으로 목표액의 130%를 달성해 일궈낸 결과물이다. 이 영화제를 기획한 정대희 대표는 "개인 프로젝트로서 겪는 물리적 어려움도 많지만, 매 순간 배워나가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거창하지 않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제의 가장 강력한 미학이자 전략이다. 사진제공 ⓒ 교류필름   개인의 서사에서 발견한 교류의 필연성 교류필름의 출발점은 정대희 대표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되어 동시대 영화문화의 필연성으로 귀결된다. 서강대 연극 동아리 '몸짓'에서 활동했던 아버지(87학번)의 영향으로 유년기부터 영화적 자양분을 섭취하며 자란 그는, 일찍이 독립예술영화의 문법에 매료되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2015년 박석영 감독의 〈스틸 플라워〉를 본 뒤, 신작 〈재꽃〉의 촬영 현장에 연출부 막내로 참여하게 된 사건이었다. 2016년 서울독립영화제 스크린에 오른 자신의 이름을 보며 그는 "독립영화계에 작은 방식으로라도 은혜를 갚고 싶다"는 다짐을 가슴에 새겼다. 2019년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한 동력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였다. 일본 현지 미니시어터를 순회하며 연간 100편이 넘는 독립영화를 관람하던 그는 기묘한 동질감을 발견했다. 국적과 언어는 다르지만, 삶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감각과 고통의 지점들이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2020년 〈기생충〉의 아카데미 석권 이후, 일본 내 한국영화 담론이 케이팝 아이돌 중심에서 봉준호와 한국 독립영화로 이동하는 변화를 목격하며 그는 확신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적 차원의 수출입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양국의 동시대를 연결하는 ‘독립영화’라는 점을 말이다.   일본 독립영화의 동시대 지형 이번 영화제에서 선보인 6편의 작품은 현재 일본 영화계의 역동적인 세대교체를 가시화한다. 이시이 유야, 오키타 슈이치 등 한국에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거장급 감독부터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신예들의 작품이 나란히 놓였다. 1일차 테마인 ‘방황하는 청춘의 분투’(〈사랑에 번개〉, 〈도쿄 우버 블루스〉, 〈너는 영원히 그 녀석보다 어리다〉)와 2일차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아이는 알아주지 않아〉, 〈루트 29〉, 〈단칸방의 사랑〉)은 현대 일본 사회의 단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공유하는 서사적 태도다. 오늘날 일본 독립영화는 거대한 사회 구조를 직접적으로 고발하기보다, 관계 사이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조용한 일상을 통해 세계의 압력을 포착한다. 고용 불안이나 사회적 고립 같은 문제는 거창한 사건으로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이 관계를 맺고 일상을 견뎌내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스며 나온다. 이는 한국 독립영화의 지형과도 유사하다. 사회적 압박 속에서도 자신만의 질감을 잃지 않으려는 인물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관계의 거리감을 섬세하게 다루는 미학적 시도는 국경을 넘어 하나의 동시대를 형성한다. 정 대표가 선정 기준으로 꼽은 ‘친숙한 감정의 결’은 곧 두 나라 청년 세대가 공유하는 보편적 삶의 조건인 셈이다. 사진제공 ⓒ 교류필름   183석이 찼다는 것, 변화하는 관람 문화의 징후 영화제 성과는 고무적이었다. 183석 규모의 상영관은 연일 관객들로 붐볐고, 일부 작품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공적 지원금이 전무한 상황에서 20대 청년 5명이 꾸린 이 작은 영화제가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얻은 비결은 무엇일까. 관객들은 더 이상 대형 멀티플렉스의 획일적인 홍보에만 움직이지 않는다. SNS 알고리즘과 입소문, 그리고 ‘희소성’ 있는 콘텐츠에 반응하는 능동적 관객층이 이 영화제의 든든한 우군이 되었다. 한 관객은 소규모 상영회를 찾는 이유를 "정보가 없는 영화를 직접 확인하는 의외성의 즐거움"이라고 평했다. 꽉 찬 객석에서 타인과 호흡하며 영화를 보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박수를 치는 경험은 하나의 ‘문화적 의례’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OTT와 멀티플렉스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관객들이 스스로 독립영화라는 대안적 영토를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대화로 완성되는 영화적 경험 교류필름영화제가 전 상영작에 GV를 배치한 것은 영화를 본 뒤의 대화까지를 하나의 완결된 영화 경험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정보가 적은 일본 독립영화의 경우, 창작자의 의도를 듣는 것만으로도 감상의 지평이 확장된다. 이번 영화제에는 아오야기 타쿠, 오키타 슈이치 등 일본 감독들이 직접 내한해 한국 관객과 마주했다. 국적과 배경이 다른 이들이 같은 스크린을 보고 각자의 해석을 나누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교류’가 발생한다. "거창한 선언보다 작은 교류의 장으로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정대희 대표의 말은 이 영화제의 정체성을 가장 잘 요약한다. 선언으로 점철된 교류의 역사 속에서, 묵묵히 실을 꿰어 이야기를 직조하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질긴 생명력을 가질지 모른다. 두 나라의 독립영화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는 데에는 그리 거창한 이유가 필요치 않다. 그저 스크린을 향해 투사되는 노란 빛줄기 하나면 충분하다. 사진제공 ⓒ 교류필름   이 글을 위해 정대희 대표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개인의 서사에서 출발해 두 나라 독립영화 지형의 현재를 잇는 그의 답변은 교류필름이라는 기획이 어떤 생각의 결로 만들어졌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아래에 전문을 싣는다.   Q. '교류필름'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 대학생 때부터 언젠가 영화 배급을 통해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잇는 가교 역할이 되고 싶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을 모아 한국과 일본의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웹 매거진을 만들 당시, 매거진의 이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영화와 일본영화를 다루기에 가교라는 의미도 가져가면서 각국에도 통용이 가능한 단어가 뭐가 있을까 생각했을 때, 「교류」가 떠올랐다. 교류 = 交流 = kouryu = gyoryu라는 점에서 발음도 비슷하다. 다른 곳에 같은 이름을 사용 중인 곳이 없음을 알게 된 이후 ‘교류필름’으로 확정하게 되었다.   Q. 한일 관계가 여전히 민감한 시기에, 독립영화로 교류를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독립영화여야만 했던 이유가 있나? → 나의 이야기는 아버지로부터 시작된다. 아버지는 서강대학교 87학번으로 연극 동아리 ‘몸짓’에서 활동했다. 당시 동아리에는 현재 독립영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레이의 겨울방학>의 박석영 감독과 <러브픽션>, <버티고>의 전계수 감독도 함께 소속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현재 연극이나 영화 업계에서 일을 하고 계시지는 않지만 문화 활동을 좋아하시는 편이었고, 그 영향으로 유아기부터 자연스럽게 다양한 영화를 보며 자라왔다. 상업영화, 독립영화, 실험영화, 애니메이션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영화를 접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독립예술영화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상업영화에서는 비교적 감흥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반면, 독립영화에서는 오래 남는 감정과 생각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취향은 자연스럽게 예술영화관을 찾는 습관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독립예술영화를 관람하며 영화과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15년 여름, 영화공간 주안에서 박석영 감독의 <스틸 플라워>를 관람한 뒤 감독님과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께서 무심코 건넨 말씀이 계기가 되어, 박석영 감독이 당시 준비 중이던 신작 <재꽃>의 촬영 현장에 저를 연출부 막내로 불러 주셨다. 당시 나는 17살의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여름방학 기간 중 일주일 정도만 참여할 수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촬영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경험들이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현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저는 처음으로 영화인으로서의 길을 꿈꾸게 되었다. 2016년 12월,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에서 상영된 <재꽃>을 관람하며 엔딩 크레딧에 올라간 이름을 보았다. 그 순간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해 <재꽃>이라는 작품을 통해 영화 현장에 발을 들였으니, 앞으로 열심히 살아가며 언젠가 이 독립영화계에 작은 방식으로라도 은혜를 갚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이후 2018년, 한국에서 영화입시를 했지만 번복된 실패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의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보며 위안을 얻었다. 해당 영화는 2015년 영화공간주안이라는 예술영화극장에서 부모님과 함께 본 것을 계기로 가장 좋아하는 일본영화가 되었으며, 이는 일본영화를 많이 찾게 되고 일본에서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꿈으로까지 이어진 계기가 되었다. 이때 아버지께서 ‘일본에 가서 영화를 공부해 보는 건 어떻냐’고 제안을 주셨고,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에는 한국에 비해 ‘미니시어터’라 불리는 소규모 예술영화관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한 다양한 영화관을 찾아다니며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본의 독립예술영화에도 관심을 가졌고, 이후 일본영화대학교에 진학해 수업을 듣는 과정 속에서 일본 독립예술영화를 더욱 깊이 보고 이해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연간 영화관에서 감상한 독립영화가 100편이 넘는 것 같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일본인 관객들과 같은 장면에서 웃고 훌쩍이는 경험을 하면서 저는 다른 나라에 살아온 사람이라도 감정은 생각보다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상영이 끝난 뒤 다른 관객이나 일본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러한 확신이 더욱 커진 것 같다. 반대로 한국영화를 볼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때마다 ‘언젠가 이 경험을 한국과 일본의 친구들이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영화 공부를 계속할수록 ‘배급’과 ‘상영’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교내·외에서 자주상영회를 개최하거나 국제영화제에서 일을 해 보며 누군가에게 영화를 소개, 보여줬을 때 보여지는 평가들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즉,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영화 문화를 직접 경험해 본 스스로의 위치를 생각했을 때 한일 영화 교류(연결)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만약 한국과 일본의 사람들이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독립영화라고 생각했다. 상업영화는 산업 구조와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국가 간 교류 역시 주로 산업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독립영화는 비교적 작은 규모로 제작되지만, 그만큼 개인의 시선과 동시대의 감정이 더 직접적으로 담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바로 그 지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한국의 독립영화를 일본 관객이 보고, 일본의 독립영화를 한국 관객이 보게 된다면, 서로 다른 사회 속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 독립영화를 주체로 서로의 일상과 감정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계기와 관계를 만들고 싶다 생각하였고, 계속해서 교류를 시도하는 중이다. 사진제공 ⓒ 교류필름   내가 일본으로 유학을 온 2019년은 한일 관계가 매우 민감했던 시기였다. 실제로 일본 비자를 받는 데에도 3개월이나 걸렸고, 유학원에서도 드문 사례라고 할 정도였다. 일본에 도착한 뒤에도 한국에서 상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장면들을 목격했다. 가와사키역 근처에서는 ‘조선인은 돌아가라’는 내용의 시위를 보았고, 가스미가세키역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우익 단체들이 확성기를 통해 한국인을 향한 차별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 광경을 처음 목격했을 때 나는 큰 무력감을 느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2020년 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하면서 일본 내 한국 영화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일본의 영화관에서는 <기생충> 상영이 연일 매진되었고, 나 역시 겨우 자리를 구해 맨 앞줄에서 영화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후 어학교나 학교에서 일본인 선생님과 친구들이 먼저 봉준호 감독과 한국 영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케이팝 아이돌 이야기 정도가 전부였고 그마저도 때로는 은연중에 편견이 섞여 있었던 것과는 분명히 다른 변화였다. 저는 <기생충>이 만들어낸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를 보며, 영화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체감하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일본영화와 한국영화가 높은 관심을 받고있는 지금 이 시기야 말로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것에 대한 필연성을 느꼈다.   Q. "거대한 선언 대신 천천히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라고 했는데, 그 '천천히'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 ‘천천히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라는 것은 거대한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 보다도 관객이 영화를 통해 서로 연결되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만들어 가며 관계를 축적해 나가는 것이다.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는 교류가 아니라, 영화제를 매년 진행함으로써 상영과 대화를 통해 관객들이 서로의 감상을 공유하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꾸준히 만들고 싶다. 또한 매주 갱신되는 카드 뉴스를 통해 독자이자 교류단을 서서히 늘려가고 싶다. 이러한 경험이 이어지다 보면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일본의 독립영화에 애정이 생기게 되어 꾸준히 찾게되고, 또 다른 공동체가 생김과 동시에 한일간의 장기적인 문화 교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제공 ⓒ 교류필름   Q. 6편을 고르면서 가장 중요하게 본 기준은 무엇이었나?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 감정의 결'이라고 했는데, 그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길 부탁드린다. → 가장 중요하게 본 기준은 ‘한국에 공개되지 않은 작품인가’이다. 한국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영화(인)를 발견, 발굴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 업계인에게는 일본을 넘어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영화 문화와 관객들의 소비문화를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국내에서는 단 한 번도 상영되지 않은 영화들을 발굴하는 것에 포커스를 두며 영화를 선정했다. 다만 다양한 사람들에게 넓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누군가에겐 처음 보는 감독이고 처음 만나는 영화, 그리고 어렵게 느낄 수 있는 독립영화이기에 한국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결의 주제, 키워드, 감정을 다루고 있는 영화들을 선정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말하는 ‘친숙한 감정의 결’이란, 국가나 문화는 다르지만 가족 관계, 사랑, 상실처럼 한국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층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사랑에 번개>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내용으로, <도쿄 우버 블루스>에서는 강제적으로 격리할 수밖에 없던 코로나 시대상의 청년의 불안을 그려내었고, <너는 영원히 그 녀석보다 어리다>에서는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아이는 알아주지 않아>에서는 자식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부모와의 관계를, <루트 29>에서는 관계에 서툰 사람들 간의 위로와 치유를, <단칸방의 사랑>에서는 사랑과 인연에 대한 미련을 해소하고 앞으로 전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겉으로 보면 일본영화이지만, 그 안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한국에서도 언급되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친숙한 감정의 결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일본영화, 더 나아가 일본의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자 상영작 6편을 선정하게 되었다.   Q.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에서 동시대를 가장 예민하게 포착"한다고 했다, 지금 일본 독립영화가 포착하는 '동시대'란 어떤 모습인가? → 지금 일본의 독립영화가 포착하는 동시대는 거대한 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도, 관계 사이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조용한 일상을 통해 현대 일본 사회의 감정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개인의 삶의 배경에는 고용 불안이나 사회적 고립, 변화하는 가족 관계와 같은 문제들이 존재하지만 다수의 독립영화들은 사건에 포커스를 두지 않고 오히려 인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일상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사회 문제가 드러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10~30대의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많으며 이 시기의 인물들은 아직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가 완전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관계 속에서의 거리감 같은 감정들이 섬세하게 드러난다.   Q. 이미 알려진 작품이 아닌,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을 일부러 선택했다. 그 '미지의 영화'를 소개하는 것에서 하고 싶었던 역할은 무엇인가? →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이란, ‘가교’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아직 서로 만나지 못한 장편 독립영화와 관객을 연결하고 싶다. 한국 관객에게는 영화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고 발굴하는 체험, 경험의 장을 제공하고 싶었다. 최근들어 국내에도 티켓값이 올라가고 OTT의 보급에 따라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높아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관객으로 하여금 이득이 없다면 선택하지 않는 현상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이미 다른 경쟁영화제를 통해 알려진 작품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영화를 만났을 때 관객이 느끼는 설렘과 발견의 순간은 더욱 특별하다고 본다. 또한 일본의 영화인에게는 한국의 열정적인 관객들 그리고 영화인들을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연결점을 만들고 싶었다. 영화제에 띄지 못한 영화, 일본 국내에서만 상영된 영화 등 해외로 소개될 기회가 없던 영화들이 국경을 넘어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 순간 자체가 창작자에게도 큰 의미가 되며 이후의 창작 활동이나 삶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교류필름영화제를 통해 서로 다른 국적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같은 영화를 관람하고 상영 이후 서로의 감상과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특히나 내가 선택한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각자의 해석과 감정을 이야기하는 순간을 모습을 보는 것이 스스로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들이 쌓일 때 비로소 영화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고 생각한다. 사진제공 ⓒ 교류필름   Q. GV를 모든 상영작에 붙인 이유는? 영화 자체보다 '대화의 장'을 더 중요하게 보는 건가? → 나는 영화를 본 뒤 서로의 감상을 나누는 과정까지를 하나의 영화 경험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번 영화제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상영작에 GV를 붙이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생각한 건 그저 나의 개인적인 문제 때문인 걸까?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혹시 틀린 생각은 아닐까? 영화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을까?’하는 경우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네이버 영화나 <씨네 21> 등 sns에 올라온 타인의 평점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물론 공감 가는 평점들도 있지만 등록한 글자 수는 한정되어 있기에 궁금증이 모두 해소되기는 어렵다. 또한 정식 개봉이 아닌 1회 한정 상영의 경우, 자신의 감상에서 더 나아가 ‘창작자의 의도’가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을 텐데 일본어를 잘 하시는 분이 아니라면 영화에 대한 국내 정보를 검색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특히 <단칸방의 사랑>같은 경우에는 도쿄에서 1주, 오사카에서 1주 총 2주 동안에만 한정 상영된 초저예산 영화이기에 인터넷에 해당 영화에 대한 정보가 굉장히 적다. 감독들 또한 자신의 영화를 언어도 문화도 다른 해외 관객들에게 보여줄 때에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해하기도 하고, 관객들 또한 창작자의 의도를 들음으로써 영화를 더욱 깊게 이해하고 싶으리라 생각했다. 따라서, 해외 영화를 들고 온 만큼 특별한 상영회를 열고 싶다는 운영 측의 마음 + 창작자와 관객의 의견 공유 + 관객의 개인적 궁금증 해소 + 다른 관객의 소리와 행동 반응으로 인한 공감의 장 + 상영 이후 창작자와 관객의 친밀감 형성을 이루기 위해 최대한 많은 상영작에 GV를 붙이게 되었다. 다만, <루트 29>의 경우에는 아쉽게도 감독께서 신작 촬영 중이시라 GV를 따로 추가하지 못했다. 해당 영화야 말로 창작자의 의도 그리고 원작이 되는 시집과의 비교 해설이 필요한 영화라고 생각하기에 굉장히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루트 29>가 한국에 정식 수입, 배급이 된다면… 그때는 꼭 GV가 함께 열리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Q. 교류필름이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장'은 어떤 모습인가요? → 앞으로도 인스타그램 매거진과 영화제를 통해 한국에 공개되지 않은 일본영화를 소개, 상영할 예정이고, 반대로 일본에 공개되지 않은 한국영화를 일본에서 상영하는 프로젝트도 계획중이다. 영화 개봉, 상영의 기회가 없던 장편 영화들에게 우리 영화제를 통해 해외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장을 만들고 싶다. 영화를 공부하고 업으로 삼은 사람이 아니라도, ‘영화’ 자체에 관심을 갖거나 영화를 시작하고 싶어하시는 지망생분들, 더 나아가 남녀노소 일반 관객분들도 편히 들려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화제 장을 만들고 싶다. 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을 정식으로 배급하는 프로젝트도 해 보고 싶고, 한일합작 영화도 제작하고 싶다. 좀 더 가볍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국제영화제의 필름마켓, 네트워크 파티 같은 장을 구축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제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나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 4년 전인 2022년, 교류필름영화제의 전신이 되는 기획서를 처음 작성했다. 당시 학교 실습 수업 중 하나였던 ‘상영기획 WS’는 직접 영화제를 기획해 보는 수업이었고, 그 수업에 이 기획서를 제출했으나 기획의 규모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선발되지 못했다. 아쉽게도 충분한 피드백을 받을 기회도 없었다. 이후에도 기획서를 보완해 교수님께 다시 보여드렸지만 돌아온 답변은 “포기하라”는 말뿐이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라도 한마디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 기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약 3년 동안 기획서를 계속 보완하고 발전시켜 왔다. 그렇게 오랜 시간 다듬어 온 기획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먼저 관심을 받게 되었고, 협업 제안을 통해 실제 영화제를 개최하는 데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여러 번 거절당했던 기획서였지만 그 가치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을 그것도 모국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큰 기쁨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협업 제안을 주신 인디스페이스 관계자분들, 영화제를 발견하고 응원해 주신 엔케이컨텐츠 디스테이션 관계자분들, 그리고 영화제를 후원해주신 텀블벅 후원자분들과 찾아와 주신 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모두 덕분에 이 영화제를 현실로 만들 수 있었다. 다른 수입·배급사들이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선택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일본에서는 영화제 상영 여부와 관계없이 매년 매우 많은 영화가 제작되고 개봉된다. 그리고 그중에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훌륭한 작품들도 많이 존재한다. 나는 앞으로 그런 영화들에 계속 주목하며 발굴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 언어의 장벽이나 정보 부족, 혹은 일본에 가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비용 등 여러 이유로 영화들을 발견하기 어려운 분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교류필름 웹 매거진과 영화제를 통해 그런 작품들을 소개하고, 관심 있는 분들과 연결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한국과 일본의 독립영화에 주목할 것이다. 많은 분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 개인적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일도 있다. 영화를 직접 배급해 보는 것, 그리고 한일 합작 영화를 제작해 보는 것이다. 다만 현재 교류필름은 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산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고 이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 있어 조심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저는 영화 업계에서 활동하고 싶지만 아직 포지션이 명확한 상태는 아니다. 연출을 하다가 영화제를 시작하게 되었고 현재는 프로듀서라는 역할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배급을 직업으로 삼고 싶기도 하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만큼 하나의 직업으로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아직 영화 비즈니스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는 영화 업계 선배님들을 찾아가며 많이 배우고 경험을 쌓아가려고 하며 당분간은 열정과 체력이 닿는 한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혹시 독자분들 중 교류필름의 행보에 관심을 가진 분이 계시다면, 가볍게라도 연락 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함께 이야기하며 인연을 만들어 가고 싶다. 함께 협업하며 교류를 이어가고 싶다.      gyoryu film 정대희 (Jung Daehee / ジョン・デヒ)   E-mail:eigadh1025@gmail.com Instagram : @gyoryufilm   * 마무리하며 교류필름영화제라는 이름처럼, 이 영화제가 거창한 선언을 하는 영화제라기보다는 한일 서로의 독립 장편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교류의 장으로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정대희 대표의 말로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교류필름의 다음을 응원한다.       글·이지혜(이해이)   문화평론가/영화평론가. 르몽드 컬처칼럼 부편집장 2022년 문화전문지 《쿨투라》 제16회 영화평론 신인상으로 등단. 2025년 단편소설 앤솔로지 『이해라는 오해에 관하여』를 출간했다. 경희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국립경국대학교에서 디지털콘텐츠에 대해 강의중이다. 《쿨투라》 및 《코아르》, 계간지 《프리즘 오브》 등에 영화평론을 기고했다. 2023년부터 르몽드 문화톡톡에 문화평론을 연재중이다. · 인스타: @leehey_cine · 이메일: leehey@khu.ac.kr URL: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28

2025.12.28

우리 시대의 영화, 〈올드보이〉 ‘K-무비’의 기원을 묻다

■ 드디어, 'K-무비'의 시작 K-무비란 무엇일까. 우리가 할리우드를 떠올릴 때 여러 함축된 의미를 함께 떠올리듯이 K-무비 역시 단순한 국적 표시는 아닐 것이다. 해외 관객이 한국 영화를 기억하는 방식, 곧 한국 영화에서 발견되는 장르적 변용과 문화적 코드가 뒤섞인 특유의 톤을 포괄한다. 세계가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리며 한국 영화를 호명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은 임권택의 '취화선'(2002)과 박찬욱의 '올드보이'(2003)로 짚을 수 있다. 영화 '취화선'은 칸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한국적 전통과 작가주의의 얼굴을 세계에 알렸다. 이후 영화 '올드보이'는 오늘날 해외에서 상상하는 K-무비의 얼굴, 곧 과감한 장르 실험과 도발적인 비극성을 촉발한 출발점에 가깝다. 그래서 올드보이는 특별하다. 세계인이 상상하는 K-무비의 기원을 이루는 영화인 것이다. 영화 ‘올드보이’(사진 : 에그필름 제공) ■ 세계 장르 영화의 '최전선' 2004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뒤, 영화 '올드보이'는 한국 영화가 더 이상 “숨겨진 보석”이 아니라 세계 장르영화의 최전선이라는 인식을 퍼뜨렸다. 해외 관객이 K-무비를 말할 때 떠올리는 강렬한 이미지-기억, 폭력적인 이미지, 기묘한 유머가 뒤섞인 밀도 높은 정서는 상당 부분 이 작품에서 형성되었다. 이후 김지운의 영화 '악마를 보았다'(2010), 나홍진의 '추격자'(2008) 등의 장르영화가 이 정서를 다른 결로 확장했고, 봉준호의 영화 '살인의 추억'(2003)과 '기생충'(2019)이 사회적 현실과 장르적 긴장을 결합하며 K-무비의 외연을 넓혔다. 영화 ‘올드보이’(사진 : 에그필름 제공) ■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변주' 영화 '올드보이'의 중심에는 기억과 비극의 구조가 있다. 박찬욱은 원작 만화의 관념적인 동기를 거의 버리고, "왜 가두었는가?"가 아닌 "왜 풀어주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오대수(최민식 분)는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더 깊은 심연에 다가선다. 진실이 구원이 아니라 파국이라는 점에서, 그 비극적 과오가 자신의 판단 착오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오이디푸스의 비극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멀게 하듯, 오대수는 자신의 혀를 자른다. 가혹한 운명에 휩쓸린 두 주인공은 이처럼 스스로를 단죄함으로써, 서사의 비극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영화 '올드보이'가 해외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연출과 미장센의 첨예함, 그리고 이러한 신화적 상상력과의 결합 덕분이다. 영화 ‘올드보이’(사진 : 에그필름 제공) ■ 형식, '비극'을 떠받치다 형식은 이 비극을 떠받치는 주요 기둥이다. 정정훈 촬영감독은 폐쇄 공간과 눌린 색감으로 오대수의 불안을 화면에 배치한다. 복도 롱테이크 시퀀스는 15년간 억울하게 감금당한 인물의 울분을 폭발시키는 한국 영화사의 명장면이다. 연기 면에서는 최민식의 오대수가 구축한 음울함을 축으로, 유지태의 이우진이 보여준 차가운 절제, 강혜정의 미도가 드러낸 불안정한 감정이 비극의 구조를 단단히 완성한다. 조영욱이 총괄한 음악 역시 이 정조를 지탱한다. 왈츠 리듬은 폐쇄적 서사와 비극에 정확히 대응하며 독특한 긴장을 만든다. 영화 ‘올드보이’(사진 : 에그필름 제공) ■ 질문으로 '영원히 남는 영화' 영화 '올드보이'가 우리의 기억 속에 강렬히 남는 이유는, 이 작품이 진실 이후의 시간을 담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은 파국의 끝에 선 인물들을 본 채로 상영을 끝낸다. 비극은 죽음이나 처벌이 아니라, 이후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현재로 제시된다. 금기를 저지른 죄의식과 자기파괴의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적 선택 역시 현재의 시선에서도 빛이 바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시각적 충격과 잔혹성을 뛰어넘어, 기억과 폭력, 말과 책임을 묻는 현대의 고전으로 남았다. K-무비라는 말이 가능해진 오늘날, 영화 '올드보이'는 여전히 그 이름의 기원을 묻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소환되는 영화다. ● 영화 '올드보이' 이야기 영화 ‘올드보이’(사진 : 에그필름 제공) 하나,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는 엘라 휠러 윌콕스의 시 <고독>에서 나온 구절이다. 둘, 오대수는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 셋, 극 중 오대수가 원한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꼽힌 이름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 참여한 스태프들의 실명이다. 글 : 영화평론가 조한기 원문: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444464

2025.12.23

[이지혜의 문화톡톡] 15분의 반란, 한국 영화의 새로운 중심이 된 단편영화

이지혜(문화평론가) 2025-12-23 르몽드 컬처칼럼 오늘날 관객은 긴 시간에 피로를 느낀다. 숏폼 콘텐츠의 1분짜리 자극에 익숙해진 뇌는 극장의 2시간을 버거워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지금 영화계에서는 숏폼이 채우지 못하는 밀도 높은 예술성을 찾아 단편영화로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메가박스는 단편 영화 브랜드인 ‘짧은영화’를 런칭하고 봉준호·김보라·연상호 등 거장의 단편을 볼 수 있는 슬레이트 키링 굿즈를 출시했다. 또한 사라질 뻔했던 미장센단편영화제가 부활했으며, 신생 배급사들이 단편으로 파티를 연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영화 생태계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다.   40분 미만의 우주, 단편영화란 무엇인가 단편영화를 규정하는 가장 명확한 기준은 시간이다. 영화진흥위원회와 미국 아카데미는 40분 미만을 단편으로 분류한다. 칸이나 베를린 같은 국제 영화제는 보통 15분에서 30분 내외의 작품을 선호한다. 40분에서 60분 사이는 중편, 60분 이상은 장편으로 구분된다.   단편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미학을 가진 형식이다. 하나의 사건, 한 가지 감정, 단 한 명의 인물에 집중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기에 장편 상업영화가 시도하기 어려운 파격적 실험이 가능하다. 기승전결의 완결성보다 여운과 반전을 강조하는 시적 구조를 띤다. 따라서 길이가 짧다고, 혹은 장편을 압축했다고 단편영화로 칭할수는 없다.   과거 필름 시대에는 한 릴이 약 10분에서 15분이었다. 3릴 미만을 단편으로 분류하던 관습이 현재의 40분 기준으로 굳어졌다. 최근에는 유튜브와 SNS의 영향으로 5분에서 10분 내외의 초단편도 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한정된 길이 안에서 영화를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단편은 독립적인 창작자의 목소리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메가박스 홈페이지 갈무리 ⓒ메가박스     거장의 원형을 소유하다, 메가박스와 덕질의 문화 최근 메가박스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지리멸렬>, 김보라 감독의 <리코더 시험>, 연상호 감독의 <지옥: 두 개의 삶> 같은 초기 단편작을 상영하는 단편영화 브랜드 ‘짧은 영화’를 런칭해 운영했다. 매달 독창적인 단편 영화를 선정해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프로젝트로, NFC기술을 이용한 슬레이트 키링 및 씬 태그 등의 굿즈를 제작해 관객들에게 제공했다. 관객들 역시 영화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정판 굿즈에 열광했다. 이는 일종의 성지 순례다. 세계적 거장이 된 이들의 치기 어린 상상력과 날것의 미학을 확인하는 과정은 영화적 취향을 고도화하려는 관객에게 지적 덕질로 자리 잡았다. 왜냐하면 100억 원대 대작이 흔한 시대에 저예산 단편의 기발함과 압축된 서사는 오히려 신선한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15분 만에 세계관을 뒤흔드는 경험이 가능하다는 걸 입증한 것이다. 관객은 영화를 '본다'를 넘어 '소유'하고 싶어 한다. 포스터 한 장, 뱃지 하나가 자신의 취향을 증명하는 물리적 증거가 된다. 한편 단편영화 굿즈는 메이저 블록버스터와 차별화된 힙함을 제공한다. 이는 대중문화 소비가 양에서 질로, 그리고 개성의 표현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장센 단편영화제 홈페이지 갈무리 ⓒ미장센단편영화제   미장센의 귀환, 장르영화의 산실이 살아나다 2025년 가장 반가운 뉴스는 미장센단편영화제의 부활이다. 2021년 폐지 논란 이후 4년 만에 열린 제21회 영화제는 1,900편의 출품작과 92%의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기실 미장센은 한국 장르영화의 산실이다. 전통적으로 이곳에서 검증된 감독들이 한국 영화의 주류로 진입하는 관문 역할을 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제가 사라질 뻔했다는 건 신인 감독의 등용문이 막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장재현, 엄태화, 이옥섭 등 미장센 출신 스타 감독 7인이 집행부를 맡아 영화제를 되살린 건 상징적이다. "단편이 살아야 한국 영화의 미래가 있다"는 절박함이 투영된 결과다. 이들은 미장센을 투자사와 제작자, 신인 배우를 연결하는 실질적인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만들고자 하는 듯 하다.   샌딩유 공식 인스타그램 갈무리 ⓒ단편영화배급사 '샌딩유'   Sending You와 단편, 관람에서 경험으로 단편영화 전문 배급사 샌딩유(Sending You)의 행보는 독보적이다. 지난 12월 20~21일 모노플렉스 앳 라이즈에 열린 샌딩유의 단편연말파티는 영화제의 엄숙함을 지우고 문화적 유대감과 독창성을 입혔다. 신인 감독들의 GV를 파티 형식으로 기획한 이 이벤트는 관객이 창작자와 직접 눈을 맞추고 소통하는 경험을 제공했다. 따라서 대형 멀티플렉스에서는 불가능한 인간적 연결고리가 단편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형성되었다. 이는 "내가 좋아하는 작고 소중한 영화"를 지지하는 팬덤의 생성으로 연결된다. 이처럼 단편은 고립된 예술이 아니라 힙한 취향 공동체의 상징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배급이란 콘텐츠를 전달하는 행위를 넘어 하나의 단단한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다. 샌딩유가 선보인 ‘파티’라는 형식은 영화가 일방적인 소비 대상이 아니라 창작자와 관객 사이의 역동적인 대화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왜 지금 단편인가? 다양성의 최후 보루 상업 영화가 흥행 공식에 갇혀 자가복제에 빠져 있을 때, 장편 독립영화가 매너리즘과 내러티브 사이에서 길을 잃을 때, 비교적 다양한 제약에서 자유로운 단편은 퀴어, 노동, 재난, 기괴한 SF 등 장르의 경계를 마음껏 넘나든다. 따라서 단편의 활기는 한국 영화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존하는 일이다. 숏폼 1분과 장편 120분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관객에게 단편의 15분에서 30분은 가장 완벽한 몰입의 시간을 제안한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전에 이야기가 끝나고, 그러나 숏폼처럼 소모되지 않는다. 여운이 남는다. 생각할 시간을 준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누구나 카메라를 들 수 있게 되었다. 단편은 거대 자본 없이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예술 양식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찍은 10분짜리 영화가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시대다.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는 건 더 많은 목소리가 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단편, 한국 영화의 가장 뜨거운 태동 대중은 이제 결과물 뒤의 과정과 윤리를 묻는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형 스크린의 화려한 CG보다 좁은 골방에서 창작자가 치열하게 고민해 뽑아낸 15분의 진심에 관객들은 응답하고 있다. 2025년의 단편영화 붐이 일시적 유행이 아니었으면 한다. 거대 자본이 포섭하지 못한 날것의 상상력에 대한 갈증의 발로로서 기능하길 바란다. 단편영화는 장편으로 가는 관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장 빛나는 영화적 목적지이길 바란다. 12월 21일의 연말 파티에서 나누었던 감독과 관객의 대화들이 한국 영화의 다음 10년을 만드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40분 미만의 짧은 시간 속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단편영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글·이지혜(이해이)   문화평론가. 2022년 문화전문지 《쿨투라》 제16회 영화평론 신인상으로 등단. 2025년 단편소설 앤솔로지 『이해라는 오해에 관하여』를 출간했다. 경희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국립경국대학교에서 디지털콘텐츠에 대해 강의중이다. 《쿨투라》 및 《코아르》, 계간지 《프리즘 오브》 등에 영화평론을 기고했다. 2023년부터 르몽드 문화톡톡에 문화평론을 연재중이며, 북마커에 영화에세이를 기고 중이다.   · 인스타: @leehey_cine · 이메일: leehey@khu.ac.kr URL: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651

2025.12.23

[이지혜의 문화톡톡] 기다림의 미학에서 다가감의 미학으로, <척의 일생> 대관객 수입보고회가 보여준 새로운 관객 접속법

이지혜(문화평론가) 2025-12-23 르몽드 컬처칼럼 <척의 일생>(마이크 플래너건, 2025) 대관객 수입보고회 후기 최근 영화계의 화두는 단연 관객의 부재다. 극장을 찾는 발길이 뜸해졌다는 한탄 섞인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관객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대신 직접 관객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파격적인 행보가 포착되고 있다. 영화 <척의 일생>의 배급사 ‘워터홀컴퍼니’가 개최한 ‘대관객 수입보고회’가 바로 그 현장이다. 이 행사는 국내 수입외화 역사상 최초로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영화의 수입 과정과 배급사의 철학을 공유한 자리였다. 영화 상영 없이, 오로지 영화가 관객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여정만으로 객석을 가득 채운 이 실험은 지금 한국 영화 시장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척의 일생 공식 포스터 ⓒ워터홀컴퍼니   투명성의 정치학, B2B에서 B2C로 전환된 영화 문법 전통적으로 영화 수입과 홍보의 과정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영역이었다. 언론시사회나 VIP시사회는 전문가와 관계자들을 위한 닫힌 잔치였고, 일반 관객은 오로지 완성된 결과물만을 극장에서 소비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배급사와 관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가 존재했고, 그 위계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유지되었다.   이번 수입보고회는 그 문턱을 과감히 낮췄다. 배급사 이사가 직접 무대에 올라 한국 극장가의 현실이 수입 외화 시장과 아트하우스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고, 해외 영화를 수입하는 과정의 어려움과 보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는 관객을 소비자가 아닌 영화적 동반자로 예우하는 태도이기도 했다. 사전신청서에 응답해 행사에 기꺼이 참가한 100여명의 관객들은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영화뿐만 아니라 한 편의 영화가 수입되어 국내 스크린에 걸리기까지의 서사에 반응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워터홀컴퍼니가 이 수입보고회에 참석한 관객들을 이후 언론배급시사회에까지 초대했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언론과 배급 관계자만의 전유물이었던 시사회에 일반 관객을 포함시킨 것은, 관객을 영화 생태계의 주변부가 아닌 중심으로 재배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수입보고회에서 언론배급시사회로 이어지는 이 연속적인 초대는 관객에게 일방적 홍보 이벤트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의 완결된 경험을 제공한다. 영화가 어떻게 선택되고 수입되며 관객에게 도달하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목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적 경험을 확장하는 과정도 콘텐츠가 되는 시대 이번 행사의 프로그램 구성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텍스트다. <척의 일생> 하이라이트 영상 공개, 국내 극장가 현실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해외 영화 수입 과정 소개, 수입사 스피치, 럭키드로우, 포토타임 등이 빈틈없이 배치되어 있었다. 여기서 핵심은 영화 본편이 아닌 영화를 둘러싼 맥락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관객들은 영화 시장의 구조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이 관람할 영화에 대해 더 깊은 애착과 책임감을 갖게 된다. OTT 플랫폼의 등장 이후 영화 관람이 점점 더 개인화되고 파편화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집단적 경험은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만이 제공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다. 또한 작품 자체의 팬을 넘어 좋은 영화를 골라오는 배급사 자체에 대한 신뢰와 팬덤이 형성되는 계기가 된다. 특정 수입/배급사의 영화를 믿고 보는 팬관객이 있는 것처럼, 워터홀컴퍼니가 앞으로 어떤 영화를 수입할지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스타 배우나 감독, 혹은 화제성 있는 소재가 관객 동원의 주요 동력이었다면, 이제는 배급사의 큐레이션 능력과 철학 자체가 관객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다. 특히 독립예술영화나 수입 외화처럼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작품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관객들은 자신이 신뢰하는 배급사가 선택한 작품이라면 일단 극장에 가볼 의향이 있는 것이다. 척의 일생 공식 굿즈 ⓒ워터홀컴퍼니 척의 일생 공식 굿즈 ⓒ워터홀컴퍼니 척의 일생 공식 굿즈 ⓒ워터홀컴퍼니   "고마웠어요, 척" 그리고 "고마워요, 관객" 스티븐 킹 원작의 <척의 일생>은 종말을 앞둔 듯한 위험한 세상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고마웠어요, 척"이라는 말에 의구심을 갖게 된 마티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 사람의 생이 갖는 기적 같은 가치를 논하는 이 작품의 주제의식은 영화계의 위기 속에서도 영화를 수입하고 배급하는 배급사의 행보와 기묘하게 맞닿아 있다.   침체된 영화 시장이라는 위험한 세상 속에서 배급사는 관객에게 우리 영화를 봐달라고 구걸하는 대신 우리가 왜 이 영화를 사랑하는지를 고백했다. 영화 <척의 일생>이 한 사람의 생에 축적된 의미와 가치를 탐색한다면, 이번 수입보고회는 한 편의 영화에 축적된 의미와 가치를 탐색한다. 어떤 고민 끝에 이 영화를 선택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한국 관객에게 전달하려 하는지, 그 여정 자체가 존중받아야 할 서사라는 것이다.   이는 영화 홍보의 목적이 일방향적 정보 전달에서 쌍방향적 가치 공유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객이 필요하다고 외치기 전에 관객이 왜 이 극장 공간에 존재해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워터홀컴퍼니는 이번 수입보고회를 통해 그것을 증명해냈다. 관객은 더 이상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영화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능동적 참여자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광고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대화다.   새로운 홍보 패러다임의 도래, 다가감의 미학 한국 영화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관객 접속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감독이나 배우가 직접 극장을 찾아 관객과 대화하는 GV(Guest Visit), SNS를 통한 실시간 소통, 팬 커뮤니티 기반 마케팅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관객을 대하는 태도의 전환이 있다.   과거의 영화 홍보는 정보의 송신자인 배급사와 수신자인 관객이라는 단선적 구조 위에 서 있었다. 배급사는 정보를 제공하고 관객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의 변화와 함께 관객은 점점 더 능동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보는 영화에서 나아가 영화에 대해 말하고 평가하며 자신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관객에게 일방적인 정보 제공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대관객 수입보고회는 이러한 맥락에서 매우 전략적인 선택이다. 관객이 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먼저 다가가고, 정보를 숨기는 대신 투명하게 공개하며, 일방적으로 설득하는 대신 대화를 시도한다. 이는 관객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전제로 한다. 영화의 수입 과정과 시장의 현실을 솔직하게 공유해도 관객은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러한 접근은 특히 독립예술영화나 수입 외화처럼 대규모 마케팅 예산을 투입하기 어려운 작품에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거대 자본의 물량 공세로는 승부할 수 없는 작은 배급사일수록 관객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이 중요하다. 워터홀컴퍼니는 그 길을 선택했고, 영화 상영도 없는 수입보고회에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반응은 그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한다. 공식 인스타그램 이벤트 이미지 갈무리ⓒ워터홀컴퍼니 공식 인스타그램 이벤트 이미지 갈무리ⓒ워터홀컴퍼니   제약을 전략으로, 불리함을 재치로, "일찍 일어나는 거에요" 캠페인 워터홀컴퍼니의 창의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척의 일생>은 크리스마스라는 최고의 흥행 시즌에 개봉하지만, 동시에 가장 치열한 경쟁 구도에 놓여 있다. 연말을 겨냥한 실속 있는 예술영화들, <아바타>같은 대작 블록버스터, 흥행 순항 중인 <주토피아> 같은 애니메이션이 좋은 시간대를 선점한 상황에서 <척의 일생>이 할애받은 것은 대부분 조조 시간대다. 일반적으로 조조 상영은 관객 동원에 불리한 조건으로 여겨진다. 관객이 오후나 저녁 시간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터홀컴퍼니는 이 제약을 오히려 마케팅 전략으로 전환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크리스마스에는 일찍 일어나는 거에요" 캠페인을 전개하며, 조조 티켓을 보여주고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는 관객에게 맥모닝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이는 불리한 시간대를 메우기 위한 프로모션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아침이라는 특별한 시간성을 영화 관람 경험과 결합시키는 시도다. 성탄절 아침 일찍 일어나 영화를 보러 가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낭만적인 의례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맥모닝이라는 구체적인 보상은 이 경험에 생활의 실감을 더한다. 제약 속에서 창의성을 발견하고, 불리함을 재치로 뒤집는 행보다. 대형 배급사라면 시도하기 어려운, 작고 유연한 배급사만이 가능한 전략이다.   다가가는 자가 마음을 얻는다 관객은 더 이상 스크린 뒤에 숨은 자들의 목소리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과정에 대해 알고 싶어 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싶어 한다.   진심을 담아 먼저 다가가는 배급사의 태도는 차가운 극장 의자를 다시 관객의 온기로 채우는 가장 강력한 전략이 될 것이다. 기다림의 미학이 지배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다가감의 미학이 필요한 때다. 워터홀컴퍼니의 실험이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한국 영화계 전반에 하나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관객이 필요하다면 관객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 손을 잡을지 말지는 관객의 몫이지만, 적어도 손을 내미는 용기는 배급사가 보여줘야 한다. <척의 일생>이 관객에게 "고마웠어요, 척"이라는 말의 의미를 묻는다면, 워터홀컴퍼니는 관객에게 "고마워요, 관객"이라는 말의 진심을 전했다. ‘대국민 수입보고회’라는 문구에 순전히 호기심이 앞서 관객 입장으로 참여했던 관객 1로서 전달 받은 진심에 답장을 보낸다. 진심이 통하길 바란다.       글·이지혜(이해이) 문화평론가. 2022년 문화전문지 《쿨투라》 제16회 영화평론 신인상으로 등단. 2025년 단편소설 앤솔로지 『이해라는 오해에 관하여』를 출간했다. 경희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국립경국대학교에서 디지털콘텐츠에 대해 강의중이다. 《쿨투라》 및 《코아르》, 계간지 《프리즘 오브》 등에 영화평론을 기고했다. 2023년부터 르몽드 문화톡톡에 문화평론을 연재중이며, 북마커에 영화에세이를 기고 중이다.   · 인스타: @leehey_cine · 이메일: leehey@khu.ac.kr URL: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652

K-Academic Spread Research Center

본 연구센터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발주한 ‘K학술확산연구소사업
(5년 50억)’의 성공적인 진행을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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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cheon Video Culture

    인천영상문화산업육성
    중장기종합계획 수립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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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eld of games

    게임분야팬덤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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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스토리콘텐츠』 제9호 발간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의 학술저널 <스토리콘텐츠> 제9호가 금일 발간되었습니다. 본 학술지는 전자저널(PDF)로 발간되고 있으며, 교보스콜라를 통해 최신호 논문을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성원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6.08.04

학술저널 『스토리콘텐츠』 제8호 발간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의 학술저널 <스토리콘텐츠> 제8호가 금일 발간되었습니다. 본 학술지는 전자저널(PDF)로 발간되고 있으며, 교보스콜라를 통해 최신호 논문을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성원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6.01.31

『스토리콘텐츠』 등재후보지 선정

우리 연구소의 학술지 『스토리콘텐츠』가 등재후보지로 선정되었습니다. 그간 투고와 심사에 참여해 주신 연구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스토리콘텐츠』는 이번 선정을 계기로 등재지 선정을 목표로 학술적 완성도를 지속적으로 높여 나가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투고를 부탁드립니다. 학술지 소개 및 투고 안내 https://kcsc.khu.ac.kr/kcsc_kor/user/contents/view.do?menuNo=10600015
2025.12.16

학술저널 『스토리콘텐츠』 제7호 발간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의 학술저널 <스토리콘텐츠> 제7호가 금일 발간되었습니다. 본 학술지는 전자저널(PDF)로 발간되고 있으며, 교보스콜라를 통해 최신호 논문을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성원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5.07.31

학술저널『스토리콘텐츠』제5호 발간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스토리콘텐츠》5호가 발간되었습니다. 《스토리콘텐츠》는 교보 스콜라를 통해 서비스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국내외 스토리콘텐츠 연구에서 의미있는 담론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07.31

[K 학술] 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4

[2024 봄 K - 콘텐츠와 아티스트 4] 5월 13일(월) : K-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1 <댓글부대> 참석자: 안국진 감독, 모더레이터 윤성은 평론가 일시: 5.13(월) 영화상영 18:30~20:30, GV 21:30까지 5월 20일(월) K-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2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참석자: 정지영 감독, 모더레이터 황영미 평론가 일시: 5.20(월) 영화상영 18:30~20:30 GV 21:30까지 5월 27일(월) K-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3 <당신이 잠든 사이> 참석자: 장윤현 감독, 모더레이터 유지나 평론가(동국대 교수) 일시: 5.27(월) 영화상영 18:30~20:30 GV 21:30까지 장소: 광화문[에무시네마] -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희궁 1가길 7 주최: 시네라처문화콘텐츠연구소 이름 및 연락처, 신청일자를 보내주세요. 신청: kln97@naver.com, 문의: 010-4165-4022 경희대 학생은 무료로 참여 가능합니다. 참가비: 1회당 15,000원, 총3회 패키지로 구매시 35,000원 (자료집과 영화상영 포함) 신청: 신한은행 110-445-085040 황영미(시네라 처), 문의 010-2673-4322 계좌로 입금 후 문자로 '입금자명/참가 날짜 알려주세요.
2024.04.15

학술저널『스토리콘텐츠』제4호 발간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가 발행하는 학술지 『스토리콘텐츠』 제4호가 발간되었습니다. 교보 스콜라를 통해 서비스 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4.01.29

[K 학술] 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3 신청

[2 0 2 3 겨울 K - 콘텐츠와 아티스트]접수중 • 11월 13일(월) : K-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1 주제: 영화감독을 말하다: 강제규, <1947 보스톤> 참석자: 강제규 감독, 모더레이터 황영미 평론가(시네라처 소장) 일시: 11.13(월)영화상영 18:00~20:00, GV 21:00까지 • 11월 27일(월) K-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2 주제: 영화감독을 말하다: 정지영, <소년들> 참석자: 정지영 감독, 모더레이터 전찬일 평론가 일시: 11.27(월) 영화상영18:00~20:00 GV 21:00까지 • 12월 11일(월) K-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3 주제: 영화감독을 말하다: 김창훈, <화란> 참석자: 김창훈 감독, 모더레이터 황영미 평론가(시네라처 소장) 일시: 12.11(월) 영화상영 18:00~20:00 GV 21:00까지 • 장소: 광화문[에무시네마] -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희궁 1가길 7 • 주최: 시네라처문화콘텐츠연구소 • 참가비: 1회당 15,000원, 총3회 패키지로 구매시 35,000원 (자료집과 영화상영 포함) • 신청: 신한은행 110-445-085040 황영미(시네라 처), 문의 010-2673-4322 계좌로 입금 후 문자로 '입금자명/참가 날짜 알려주세요.
2023.11.04

[K 학술] 2023-2024년도 K-M00C 강좌 수강신청 안내

안녕하세요,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산하 K학술확산연구센터에서 2023-2024년도 K-M00C강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어국문학과 교수님들께서 참여하신 강좌들이 무료로 운영 중에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현재 수강 신청이 가능하니 관심 있는 학생들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일정 수강 신청: 2023년10월23일(월) ~ 2024년2월9일(금) 수강 기간: 2023년11월6일(월) 9:00 ~ 2024년2월9일(금) 23:30   ◆강좌 K-콘텐츠와 한류사(안숭범 외 3명)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10006?tm=20231023154039   스토리콘텐츠와 스타시스템(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임대근)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10005?tm=20231023154103   언어로 본 한국인의 문화유전자(조현용)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10003?tm=20231023154114   K-드라마로 배우는 한국어 의사소통의 기초(이정희)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10002?tm=20231023154124   한국 사상과 문화유산(신한대학교 교수 김태우)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10000?tm=20231023154314   역사와 함께 읽는 고전문학(차충환)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9999?tm=20231023154142   수용하는 대중, 향유하는 대중(한양대학교 교수 이재복)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9997?tm=20231023154201   세대로 보는 현대문학(서하진)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9994?tm=20231023154223   K-무비와 글로컬리즘(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백태현)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9993?tm=20231023154242   한국어의 역사-어원과 변화(김양진)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10001?tm=20231023154304   ◆수강 신청 방법 1) K-MOOC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 2)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검색 또는 연구소 K-MOOC 페이지로 이동 https://new.kmooc.kr/view/course/institution/kaep_khu 3) [수강신청하기]를 누르면 무료 수강신청 가능. 
2023.10.24

[특강] 컬처 트렌드 2024 콜로키움

2023년 11월 4일 토요일,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와 컬처코드 연구소 주최로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문과대학 101호에서 9:40분부터 <컬처 트렌드 2024 콜로키움>이 개최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웹툰, 대중음악 분야의 2023년을 정리하고, 2024년을 예측하는 유익한 시간이 될 예정입니다.
2023.10.13

[특강] 한류와 한국학 해외학자 특강 04 미국 한류와 한국학 개최 안내

미국의 한류와 한국학 - 특강 일정 1) "미국의 한류와 한국학" 강의(10:00-11:30) 강사:  오은영(Rice University 한국어 한국학 강의) 2) 질의응답(11:30-12:00) - 특강장소: ZOOM 실시간 회의 접속 - 특강일시: 2023년 9월 8일(금) 오전 10:00-12:00 - 대상: 한국어•한국학 관심자 - 문의: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02-961-0418 / kcsc@khu.ac.kr)   *포스터의 QR링크로도 접속이 가능합니다.   https://khu-ac.zoom.us/j/84889359609 - 주최: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K-컬처·스토리콘텐츠 연구소 - 주관: 국어국문학과 혁신과제사업단 - 후원: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09.06

[K학술] K-콘텐츠와 아티스트 2 신청

K-콘텐츠와 아티스트 2가 9월 19일(잠), 10월 10일(더 문)에 예정되어 있습니다.(경희대 학생은 무료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18:00-20:00 영화상영 ~21:00 감독 및 평론가(잠: 조혜정 / 더 문: 심영섭) GV 장소: 종로 에무시네마 신청방법: 이름 및 연락처, 신청일자를 tmzoqs@khu.ac.kr로 발송(잠은 9월 14일까지, 더 문은 10월 5일까지 신청 가능합니다.)
20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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