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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5

'녹야' 초록빛 여자들에게 구원은 개의 얼굴을 하고 온다.

"구원의 모습이 꼭 사람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의인법은 '사람이 아닌 생물이나 사물이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십 대 초반의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던 중이었다.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해왔다. "개가 엉엉 울었다고 표현하면 그것은 의인법입니까?"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학생이 다시 물었다. "인간만 울 수 있습니까?" 잠시 침묵했다. "짐승의 언어와 행동을 모르므로 개가 짖는 행동이 우는 것인지, 말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학문적으로는 명확하게 인간만 운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 감정, 즉 희노애락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개도 울 수 있습니다."   <개의 삶을 원하는 여자>   영화 속에서 종종 서로에게 구원이 되는 관계를 발견한다. 그런 관계는 대부분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필수 조건으로 건다. 수많은 사랑의 양태가 지질하고 누추한 일상 속에서 구원의 기색으로 나타난다. 이들 사이에 고난이 있을수록 사랑은 빛난다. 다시 말해 서로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라는 과정에 있어 고난이고 금기일 때 역설적으로 구원은 더욱 빛난다.  <델마와 루이스 >(1993)의 두 여인이 그랬다.  <캐롤 >(2016) 속 캐롤과 테레즈의 관계가,  <아가씨 >(2016)의 숙희와 히데코가 그리고  <윤희에게 >(2019)에서 윤희와 쥰, 새봄의 모양이 꼭 그랬다.    <녹야 >(한슈아이, 2023)는 앞서 말한 영화들의 맥을 잇는 퀴어영화다. 그러므로 진샤(판빙빙)와 초록머리(이주영)의 관계는 언뜻 여타 다른 퀴어영화와 같은 맥락으로 읽히기 쉽다. 그들은 서로의 삶을 구원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은 서로에게 구원이 아니다. 명확히 구분 짓자면 서로의 존재는 구원이라는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작동하는 '사건'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녀들을 구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구원의 모습이 꼭 사람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무엇보다도 구원은 받았을까…   '한슈아이'의 카메라는 서울 도처에 널린 붉은 십자가를 여러 번 클로즈업한다. 메아리치는 찬송가 사이로 축복의 노랫말이 닿지 않는 도시의 모퉁이를 아낌없이 전시한다. 채도 낮은 건물의 틈을 집요하게 비집어 찍는다. 이러한 장면들 속 곳곳에 설치된 푸른 트리와 붉은 전구 장식은 초록머리와 진샤가 함께 지내는 하룻밤이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한 해의 끝,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공항 한구석. 진샤와 초록머리는 짐승에 가까운 본능으로 서로를 알아본다. 내국인과 외국인, 한국인과 중국인이 갖는 언어의 장벽과 구분은 이들 관계에서는 무의미하다. 일상의 모양이 똑같이 지옥이나 마찬가지인 두 여인은 각자의 '사건'을 목도하고 서로를 구해보고자 애를 쓴다.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구할 수 있는 기적이 도래한다면 좋았겠으나,  <녹야 >에서 두 여성에게 일어난 일 중 유일하게 행운이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은 겨우 크로스드레서(여장남자)의 호텔방 열쇠를 훔치는 장면뿐이다. 둘은 이 공간에서 초록머리 몸에 남은 타투처럼 '초록빛 폭발에 가까운' 성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아주 잠시간 본능적으로 서로를 아끼며 위무한다. 이 씬 직후 둘은 아침 뉴스를 함께 보며 "다음 생에는 개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내뱉는다.   떡볶이를 먹던 초록머리는 진샤에게 자신이 키우는 '딸래미'가 이 개와 닮았다고 스치듯 이야기한다. 사실상 초록머리가 '딸'이라고 지칭하는 대상은 남자친구와 키우는 흰 강아지를 말한다. 영화의 말미에서 홀로된 진샤가 초록머리의 흰 강아지를 품에 안기까지, 그녀들은 러닝타임 내내 사냥개 같은 남자들에게 쫓긴다. 표면적으로 그들은 마약밀매라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도피한다. 초록머리는 물건을 빼돌렸기 때문에 남자친구에게 쫓기고, 세관검사원인 진샤는 밀매에 가담했기 때문에 남자들에게 쫓긴다.    이들은 죄를 짓기 전에도 쫓기는 삶이었다. 마약에 취한 초록머리는 알게 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진샤에게 아버지가 자신에게 가했던 정신적 학대를 고백한다. 진샤 또한 법적남편에게 쫓기며 살았다. 남자는 시종일관 진샤에게 신의 은혜에 대해 말하고, 성경의 구절을 되뇌며 신부님을 찾아가 원죄를 빌고 속죄해 구원받자고 강요한다. 남자는 입으로는 용서와 축복을 외우며 눈으로는 진샤의 몸을 집요하게 훑는다. 진샤가 원치 않는 와인을 마시길 강제하고, 진샤의 몸을 함부로 침범한다. 혼자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진샤를 강압적으로 눕히고 폭력과 욕설로 위협하며 말한다. "용서해줄게, 내가 다 용서할게."   용서받을 일을 한 적 없는 진샤가 굳이 용서받아야 할 일인 마약밀매에 가담한 이유는 특히 중요하다. 진샤에게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자신이 구원이라고 주장하는 남편에게 진 빚을 갚고 온전히 그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삶의 목표가 있었다. 또한 직장상사와 마약밀매원, 경찰까지 모두 한패였기 때문에 정직하게 일한 자신은 오히려 밀고자가 되었으므로 필연적으로 범죄에 가담해야만 했다. 이처럼  <녹야 > 속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진샤와 초록머리를 삶의 끝으로 쫓고 내몬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는 전부 목표의 목을 물어 숨통을 끊기 전엔 절대 포기하지도, 놓치지도 않는 사냥개의 본능을 지닌 자들이다.   물론, 진샤와 초록머리가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서로를 위안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 이는 결과적으론 남성이다. 그러나 이 남자는 게이이다. 볼링장 씬에서 그는 애인인 듯 보이는 다른 남성에게 떠나지 말라고, 헤어지지 말자고 매달리며 울다가 정신을 잃는다. 그녀들은 쓰러져 누운 남자의 지갑을 뒤져 호텔 방의 열쇠를 훔친다. 이 공간은 남자가 애인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크리스마스를 기념으로 특별히 꾸며둔 곳처럼 보인다. 방에 도착한 그녀들은 아까의 남자가 사회적 함의의 측면에서 여성으로 보일만한 복장으로 스스로를 꾸미는 취향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낸다. 성별의 구분으로는 남성이지만, 성향의 구분으로는 여자였을지도 모르는 그가 준비해 둔 것들을 진샤는 살뜰히 헤집어 본다. 그리고 초록머리에게 말한다. "이 남자는, 대체 왜 여자가 되고 싶었을까?"   <어린 개의 얼굴을 한 구원>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를 두 여자는 이해할 수 없다. 초록머리가 개로 태어나고 싶은 이유를 개는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초록머리와 진샤의 말에 의하면 "여자로 사는 건 너무 힘들고, 재미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초록머리는 "나쁜 년"이 되고 싶다. 그것이 어렵다면 다음 생에서라도 '개'의 삶을 살길 소망한다. 이처럼 '나쁜 년'이 되고 싶고, '개'가 되고 싶다는 대사는, 바꾸어 말하자면 지금의 초록머리는 '개가 아니'며, '나쁜 년이 아니'라는 진실을 내포한다.   영화 속에서 초록머리는 진샤와 비교하자면 훨씬 '나쁜 년'처럼 보여진다. 예컨대 초록머리는 진샤와 첫 만남에서부터 그녀를 곤란하게 한다. 세관검사원인 진샤를 업무적으로 괴롭게 했으며, 일면식도 없던 그녀의 퇴근을 기다리고서 다짜고짜 따라나선다. 진샤의 집까지 침범한 이후에는 그녀의 사적영역에 마구 끼어든다. 초록머리의 행위는 자신의 바람처럼 '개'와 다름없는 듯 보인다.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짐승처럼, 그녀는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이 더 편하고, 진샤와 닿는 맨살이 더 편하다. 스크린 속 초록머리는 자신이 벌인 모든 일들에 일말의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범죄 직후 그녀들은 떡볶이를 먹는다. 식욕이 없는 듯 젓가락을 들지 않는 진샤에 비해, 초록머리는 떡볶이 소스가 얼굴에 묻는지도 모른 채 입속으로 떡가닥을 욱여넣는다. 이때 나타나는 그녀의 모습도 마치 '개'와 같은 행동이다. 그녀는 단지 배가 고프기 때문에 먹는다. 그녀의 행동에는 어떠한 인과도 없다. 그저 배가 찰 때까지 먹는다. 이러한 풍경 속에서 카메라가 포착하는 것은 포장마차 안에 갑자기 등장한 흰 개다. 먹는 것을 멈추고 개의 얼굴을 쓰다듬는 초록머리의 동작을 한슈아이는 화면안에 유독 세심하게 담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길이 좋아서 본능적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유순한 흰 개의 얼굴과, 진샤에게 얼굴을 들이미는 초록머리의 얼굴이 닮아 보인다면 그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초록머리와 헤어진 진샤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 그녀는 아주 잠깐 멈춰선다. 이때 진샤의 시선은 낡은 교회를 향한다. 카메라는 진샤 1인칭의 시점으로 교회 간판 근처에 달린 스피커를 수리하는 한 남자를 풀 쇼트로 잡는다. 남자가 스피커를 만지는 도중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장 31절)라는 성경의 문구가 어둠 속의 간판 위에서 선연히 클로즈업 된다. 이 장면 직후 찬송가가 울려퍼지던 스피커가 거칠게 낙하한다. 한슈아이는 이 씬을 통해 두 여성의 삶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구원의 기미가 필멸했음을 드러내어 못 박는다.    <녹야 > 속에서 나타나는 교회의 첨탑과 핏빛 십자가의 모티브는 서울의 어두운 야경을 파수하듯 빛난다. 그녀들의 생에 가끔 드리워졌을 이 붉은 빛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구원의 빛은 아니었던 듯 보인다. 다만 일 년 중 단 하루, 온 세상을 축복하는 초록빛 아래에 진샤가 있다. 어린 흰 개와 있다. 진샤는 어린 개를 힘껏 끌어안는다. 이제 그녀는 개의 얼굴을 하고 왔던 찰나의 구원을 향해 미련없이 팔을 뻗는다.   [글 이지혜 영화평론가, leehey@ccoart.com]  쿨투라, https://www.ccoart.com/news/articleView.html?idxno=4409

2023.11.02

'키리에의 노래' 기억의 여백이 노래가 될 때

"이름 뒤에 숨은 이름" 영화 이터널 선샤인(미셸 공드리, 2004)에서 연인이었던 클레멘타인과 조엘은 이별 후 서로를 잊기 위해 기억의 일부분을 인위적으로 제거하기로 한다. 그들은 차례대로 기억을 지워주는 병원인 '라쿠나'(lacuna, 라틴어로 '잃어버린 조각들'을 뜻한다)를 찾는다. 영화는 이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알렉산더 포프의 'Eloisa To Abelard' 시구절 일부를 대사로 사용한다.  결백한 수녀의 운명은 얼마나 행복한가 How happy is the blameless vestal's lot! 자신이 잊어버린, 그 세상에게서 잊혀가니 The world forgetting, by the world forgot. 순결한 마음을 비추는 영원한 햇빛이여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모든 기도는 받아들여지고 욕망은 물러난다 Each pray'r accepted, and each wish resigned.  영화의 제목인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은 '순결한 마음을 비추는 영원한 햇빛'을 뜻한다. '순결한 마음'이란 지리멸렬해진 사랑의 기억이 망각을 거쳐 다시금 결백해진 연인들을 지칭하는 문장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신작 키리에의 노래(슌지, 2023)(이하 <키리에>)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이십 년도 다 된 영화를 떠올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영화 모두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알렉산더 포프의 시구(詩句)가 재해의 기억을 소거함으로써 당시 겪은 감정의 극치를 자비 혹은 희망으로 치환해 낸 '루카(아이나 디엔드)'의 내면을 지칭하는 문장으로도 썩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키리에로 살아가는 루카는 노래로만 소통한다. 루카는 유년기에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재해를 겪고 천애고아가 되었다. 그녀는 가급적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요, 노래는 가능합니다.'라는 문장을 글로 써서 보여준다. 그리고 온 가족이 뿔뿔이 쓰나미에 삼켜진 사건 당시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라고도 답한다. 이러한 진술은 거짓이 아니라 진실에 가깝다. 말하자면 <키리에>는 어떤 의미에선 페이크 다큐다. 거대한 재해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의 그때와 지금 사이, 즉 '루카'의 잃어버린 기억을 중심으로 12년의 세월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키리에>는 생존자인 '루카'가 잃었거나 인위적으로 지워버린 기억의 자리를 등장인물 각자가 증언해 조각조각 퍼즐을 맞춰보는 영화다. 이야기의 전개나 시점이 다소 복잡하고 무질서하게 느껴질 수 있다. <키리에>는 개개인이 겪은 재해의 기억과 경험을 일본 전역을 톺아보며 다양한 시점으로 진술해 맞춰 나가는 '증언영화'이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진술이 그녀를 중심으로 모이는 동안, 루카는 기억의 여백을 '모든 기도는 받아들여지고 욕망은 물러나는' 21세기식 진혼곡인 '키리에'(Kyrie(Κύριε) Eleison는 유일하게 라틴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기록된 자비송이자 미사곡이기도 하다)로 치환해 부른다. 그러므로 <키리에>는 상흔의 기억을 그러모아 음악으로 증언하는 영화다.  <키리에>는 첫 씬과 에필로그 전의 마지막 쇼트를 흰 설원으로 장식한다. 카메라는 백지 같은 눈밭을 씩씩하게 헤치며 걷는 고등학생 시절의 루카와 잇코(히로세 스즈)를 먼발치에서 내려다본다. 나란히 누운 소녀들은 말없이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바라본다. 서로를 보며 웃다가 눈을 감는다. 감은 눈 사이로 스산한 그림자가 내려앉는다. 이때 잇코가 두른 푸른색 목도리는 모노톤으로 착각할 만큼 온통 백색인 화면 속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클로즈업된다. 언뜻 두 소녀는 커다란 퍼즐 판에서 유일하게 제 자리를 찾은 두 개의 조각처럼 무결하게 비춰진다. 그러나 이와이 슌지 감독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 사이 소녀들의 시간을 완전히 찢어발긴 채 세상에 내던진 후에 보여준다. 두 장면은 같은 장면이지만,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는 영화 속 주요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살아가므로 같은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첫 장면 이후 루카는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언니인 '키리에'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거리의 가수가 된다. 키리에가 된 루카는 노래가 아니면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한다. 한편 잇코의 본명은 '마오리'다. 그러나 스스로 '이치죠 이츠코'라는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을 다시 줄여 '잇코'로 지칭하며 살아간다. 두 소녀는 각자 다른 '침묵의 계기'로 인해 본인의 의지로 이름을 버리고, 긴 시간 동안 서로 헤어진다. 그리고 우연히 만나 짧은 시간을 '거리의 가수'와 '아마추어 매니저'로서 함께 보낸다.  119분으로 편집된 한국개봉판에서 영화의 중반부 잠깐 등장하고 마는 잇코의 결혼사기 상대 중 한 명인 '나미다메'(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178분짜리 언컷버전에서의 그는 영화의 결을 바꿀만큼 매우 중요한 배역을 담당한다)의 경우에도 본명은 따로 있으나 스스로 지은 이름을 사용한다. 이때 '나미다메'는 키리에로 살아가는 루카를 만난 후 자신에게 본명이 있다고 설명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다. "쓸데없는 이야기였죠?"라는 대사다.인간은 종종 기억이나 지식의 한 단면을 전체로 믿어버리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한 판단은 가끔 '양심없는 행동'이 된다. 기억이란 인간이 가진 것 중 가장 신뢰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키리에> 속에서 주인공 '루카'를 제외한 인물들, 특히 가명을 쓰는 잇코와 나미다메는 위와 같은 의미에서 좀 양심이 없다. 대학 진학의 꿈을 꾸던 마오리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잇코로 사는 동안, 학창 시절 자신이 제일 경멸하던 인간 유형 중 하나였던 결혼사기꾼이 된다. 사람 좋아 보이던 나미다메는 키리에로서 살아가는 루카에게 현재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인물이다. 잇코는 성을 이용해 남을 등쳐먹고 산다는 지점에서 양심이 없고, 나미다메는 잇코에 대한 화를 루카에게 성적으로 보복하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결국 미수에 그쳤다고 하더라도 양심이 없다. (한국개봉판에서 나미다메 및 루카와 관련된 씬은 전부 고스란히 삭제되었으므로 장면에 대해선 따로 부연설명 하지 않겠다.)  그러므로 나미다메가 처음 등장한 씬에서 내뱉은 "쓸데없죠"라는 대사는 전혀 쓸데없는 말이 아니다. '이름'이라는 고유명사는 개체의 존재나 종류를 특정하기 위해 명명하는 것이다. 이름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이름은 각자가 존재해 온 생(生)만큼이나 거대한 시간을 끌어안고 타자와 나를 구분 짓는 단어다. 이름을 바꾼 세 명은 어떤 이유에서건 과거를, 기억을, 있었던 사실을 망각하기를 원하는 인물들이다.  한편, 재해의 상흔 속에서도 이름을 유지하는 '나츠히코'(마츠쿠라 호쿠토)는 루카의 언니이자 연인이었던 키리에와 배 속의 아이를 동시에 잃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미성년이었던 때 키리에와 사랑이라는 이름의 일탈을 한다. 둘은 계획에 없던 아이를 갖는다. 버거운 책임감의 이유가 되었던 키리에가 실종되자 나츠히코는 그리움과 후회로 괴로워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영영 그녀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는 스스로 '양심 없음'을 고백하고 자신의 고해 같은 증언을 들어주는 사람 모두에게 기도하듯 용서를 구한다. 나츠히코는 앞의 세 명처럼 기억을 망각하거나 회피하는 인물이 아니다. 두려움이라는 공포 앞에서도 기억을 보존하고 인정하며 극복하길 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이처럼 이름으로 명명되는 기억은 인간의 근본적 한계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기억은 인간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과 학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종종 한 가지 행동을 하기 위해 대부분을 망각하며, 이제 생겨나야 할 권리를 챙기기 위해 자신의 배후에 있는 것에 대해 불의를 행한다. 영화 속에서 진실을 회피하고 불의를 행한 자들은 모두 그에 응당한 대가를 받는다. 앞서 말했듯 언컷버전의 나미다메는 사랑에 속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루카에게 돌이킬 수 없는 화풀이를 시도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실패하고 남성성도 사랑도 잃는다. 결과적으론 루카를 궁지에 빠지게 했던 잇코 또한 삶의 희망을 인과적으로 거세당한다.  영화의 말미, 잇코가 단말마의 비명 속에서 눈을 감기 전 불리웠던 이름이 '마오리'라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 장면은 상처를 부정하기 위해 기억 덩어리인 이름으로부터 도망쳐 온, 재해의 상흔을 마주보지 않고 극복의 의지를 외면하는 자들에게 이와이 슌지가 내리는 의미심장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잇코가 마오리였던 시절 그녀를 감싸고 있던 명징한 파란색 목도리는 키리에로 살아가는 루카의 푸른색 원피스로, 루카가 살아가는 드넓은 하늘로 전이된다. 잇코의 푸른빛이 루카에게 전이될수록, 잇코의 몸에 깃든 푸른빛은 점점 색이 바래어 간다. 둘은 바닷가에 나란히 누워있다. 잇코는 루카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청하고, 루카는 잇코에게 고백과도 같은 노래인 '혼자가 좋아'를 불러준다. "너를 좋아했었어. 둘이 함께 있을 땐 신기한 시간이었어. 나는 나일 뿐 혼자가 좋아." 루카는 분명히 잇코와의 시간을 기억한다. 잇코와의 시간뿐만 아니라 재해의 기억도 일부 떠올린 듯 보인다. 고요하기만 한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이 화면에 보여질 때(컷어웨이Cutaway), 루카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어쩌면 모두 이 바다속에 함께 있을 것 같아. 따뜻한 느낌도 든다"는 그녀의 말은 모든 걸 받아들이고 극복하기로 한 듯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시퀀스 직후 이와이 슌지는 갑작스레 바다를 모노톤으로 채색한다. 나아가 미사에서 사용하는 진혼곡, 키리에 엘레지를 삽입한다.  노래란 무엇일까. 노랫말은 꼭 명징하고 확실해야 할까. 언어가 불완전했던 과거 인간의 노랫말은 아마도 무의미한 웅얼거림에 가까웠을 것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러한 웅얼거림이, 말로 나올 수 없는 절규와 비명이 한데 모여 노래가 되는 장면을 가끔 만난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와 숏트에는 하나의 겸연쩍은 조건이 있다고 보는데, 바로 노래를 공유하는 순간만큼은 비슷한 결의 기억이나 감정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셀린 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20)의 경우도 그렇다. 귀족인 엘로이즈와 화가인 마리안느는 서로 다른 계급의 여성으로서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를 갖는다. 이들 아래에는 소피라는 하녀가 위치한다. 세 여인의 인생은 분명 다른 양태를 띌 것이므로 완벽히 동일한 정서를 공유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들은 이따금 비명의 기억을 나눈다. 나눈다는 행위가 애써 위로하거나 감싸 안는 것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세 여인은 서로에게 있어 최악의 순간을 목격해도 그러한 기억을 캔버스 위에 기록할 뿐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설익은 위로를 전달하지 않는다. 다만 깊은 밤 불가에 모여, 낯선 이들이 부르는 흑인 노예의 노동요를 따라 부르는 것으로 각자의 상흔을 연대하고 위무한다. 타오르는 불꽃 사이에서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사운드는 서로가 기억하는 것은 다르더라도, 이 순간 공유하는 감정이 완벽하게 평등하고 동등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분명한 노랫소리다.  아리 애스터의 <미드소마>(2019)의 후반부에서도 이러한 조건을 가진 장면을 볼 수 있다. 주인공 대니는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을 목도하고 지독한 상실감을 겪는다.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연인을 잃은 절망 앞에서 오열하는 그녀를 온전히 위로하는 건 그녀의 감정과 상반되는 따뜻한 포옹이나 다정한 말이 아니다. 공동체 '호르가'의 부족원은 대니를 안아주는 대신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강하게 감싸 쥔다. 그리고 그녀와 똑같이 울부짖는다. 일말의 대화 없이 이루어지는 이 불규칙한 비명 속에서 그들은 완벽하게 평등하고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키리에>의 루카는 스스로 의식하지 않은 기억이나 아직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않은 기억, 즉 무의도적 기억인 '잔재'를 노래로 꺼내놓는 것처럼 보인다. 루카는 자신의 취향이나 자아가 형성되거나 분별되기 전, 너무 어린 나이에 끔찍한 재해를 겪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가장 가까운 연장자 중 친언니 '키리에'의 이름과 삶을 뒤집어쓴다. 하나의 존재로서 만들어낸 기억이 부족하거나 부재하므로 루카로선 말을 할 수 없다. 그러나 키리에로는 노래할 수 있다. 언니인 키리에는 루카에겐 없었던 자아가 있고, 취향이 있고, 의지가 있는 하나의 완성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덜 자란 루카는 '키리에'의 이름 뒤에 숨었다. 생존자인 루카가 고작 한두번 만난 게 전부였던 언니의 연인 나츠히코를 무작정 찾아간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루카가 노래로 베푸는 자비는 사실 키리에의 자비이고 인격이다. 루카의 무의식 속 잠재되어 있는 오래된 비명들은 키리에의 이름 뒤에서만 겨우 터져 나오는 노랫말이다. "하나의 도시는 여러 종류의 인간들로 구성된다. 비슷비슷한 인간들은 도시를 이루어내지 못한다."(sennett 1977)는 말을 증명하듯 루카가 거리에서 만나 관찰하고 수집한 개개인의 재해 경험과 기억은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을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상흔은 루카가 간직한 상처와 영원히 같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마음을 치유하는 완전한 위로와 공감은 불가능하다. 루카는 이미 그 사실을 안다. 때문에 타자에게 위로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루카는 그저 영원히 다독여지지 않는, 결국에는 개인의 상실일 뿐인 재해의 기억을 노래하기로 마음먹는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극장을 가득 채운 루카의 목소리는 나로서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재해와 기억 사이의 여백을 노래하므로 그저 푸르고 시리고 아름다워서 잔인했다. 루카가 끝까지 키리에로 살아가도, 스스로 가둔 이름 속에서 늘 혼자라고 하더라도 외롭지 않기를 가만히 바랐다. '키리에'로 대표되는 모든 인간들에게 내리쬐는 햇빛이 무결하고 따뜻하기를, 루카를 감싼 푸른색이 마치 파랑새처럼 안전하고 좋은 길로만 그녀와 우리를 인도해 주기를, 부끄럽지만 좀 간절하게 빌었다. ※ 추신  필자는 지난 10월 초에 있었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의 오리지널버전(178분)을, 10월 24일 진행된 언론배급시사회에서 한국개봉용으로 편집된 일반버전(119분)을 둘 다 보았다. 이 평론은 일반버전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두 영화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정서의 결이 아주 다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와이 슌지 감독은 일반버전을 보고 오리지널버전도 봐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덧붙였다. 또한, 오리지널버전의 몇몇 장면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 <키리에의 노래>는 하나레 고제 오린(시노다 마사히로, 1977)(한국명 <오린의 발라드>)의 오마주라고 강조하며 나라마다 정서와 문화가 다르니 그 영화를 꼭 봐달라고 당부했다. 서울로 돌아와 <오린의 발라드>을 봤고, 오리지널버전은 이 작품의 오마주가 분명히 맞았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이에 대한 감상은 일반버전을 기준으로 쓴 이 평론에선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오리지널버전에 관심이 생긴다면, 나 또한 마찬가지로 꼭 <오린의 발라드>도 같이 봐주길 권유하고 싶다.  [글 이지혜 영화평론가,leehey@ccoart.com]  2023.11.02. 출처: https://www.ccoart.com/news/articleView.html?idxno=4396

2023.09.11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게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레벨 디자인’ 게임 관계자들에게는 상식적인 이야기겠지만, 게임에서 레벨 디자인은 게임이 담고자 하는 세계를 디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저가 어떻게 게임을 경험하고 반응할지 예측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세계가 어떤 주제를 담고 있는지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가령, 수많은 논쟁과 악습을 생산했음에도 <리니지2>(엔씨소프트, 2003~)의 레벨 디자인을 비난할 방법은 많지 않다. 물론 일부 플레이어로부터 <리지니2>의 레벨 디자인은 오늘날까지 게임업계의 악습으로 고착된 사행성 기반의 ‘착취적 BM’이 자라나는 초석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되려 엔씨소프트가 지난 10년간 ‘BM 연구’라는 그럴싸한 미명 아래에 범해온 운영 권력의 남용을 호도하는 지적에 가깝다. 그만큼 레벨 디자인은 게임 콘텐츠의 성패를 넘어, 게임 자체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레벨 시스템이 게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리니지>가 플레이어를 공성전까지 이끄는 경위를 간단하게 풀어보자. <리니지>를 기반하고 있는 바탕은 말 그대로 던전, 즉 맵이다. <리니지>는 로그라이크의 유산을 계승하며 ‘방’과 함께 콘텐츠들의 격리 수준을 꽤 높게 설정했다. 동시에 여기에 PvP 시스템을 함께 적용시켜 무작위성과 우연성을 겹쳐놓았다. 이렇게 급격히 상승한 무작위성과 우연성은 플레이어에게 행위의 결과에 대한 다양한 이유를 만들어준다. 다만, 그 이유는 ‘플레이어가 끼어드는 바람에 파밍을 망쳤다’와 같은 스트레스 요인으로 귀결된다. 이 스트레스들은 PvP 시스템과 얽혀있는 것으로서, “지면 복종해야 하고, 이기면 지배한다”는 강력한 행동 원리를 플레이어에게 쥐여준다. 이는 곧 <리니지>의 정체성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리니지>를 규정하는 건 공성전, 즉 “쟁”이다. <리니지>의 “쟁”은 단순한 부족 간의 전쟁이 아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나름의 사연을 쌓아온 플레이어가 플레이 내내 게임으로부터 부여받은 갈등과 스트레스를 폭발시키는 장에 가깝다. “쟁”의 레벨 디자인이야말로 <리니지>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 짓는 요소다. RPG로서 <리니지>에서 가장 유별나고 정체성이 강한 시스템은 캐릭터가 중첩되지 않는다는 현상이다. 이는 캐릭터가 픽셀을 잡아먹어 공간을 하나의 자원으로 삼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수백명의 플레이어가 한 공간에서 전략을 짜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처럼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에는 ‘하나의 자원을 둔 플레이어의 갈등’을 테마로, 멜서스적 위기를 구체적으로 재현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는 ‘리니지 라이크’라는 명사를 사용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오픈 월드, 그리고 개입과 자기효능감 이처럼 레벨 디자인은 하나의 게임 장르를 탄생시킬 수도 있는 게임의 핵심 요소다. 레벨 디자인에 있어 최근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오픈 월드(Open World)의 적극적인 적용일 것이다. 말 그대로 ‘열린 세계’인 오픈 월드는 흔히 “플레이어가 갈 수 없는 곳이 없는 게임” 정도로 일컬어진다. 장소의 이동에 대한 자율성이 오픈 월드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불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오픈 월드의 가장 큰 특징은 오브젝트(object)에 대한 접근(Enter) 권한이 절차적이지 않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게임의 구성 요소에 접근하기 위해 게임의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는 상태를 구현한 것이 오픈 월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는 게임이 설정해놓은 다양한 미션 등을 통과해야 하는 과정들이 있지만, 오픈 월드를 적용하는 이유는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만끽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자기효능감이란 자율도를 사회학습이론의 거장인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제시한 개념으로서, 어떤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을 말한다. 한 마디로 많은 스튜디오가 오픈 월드를 게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플레이어가 게임이 결정해준 요소가 아닌 스스로 적절한 결정을 수행하고 있다는 믿음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 게임의 구성 요소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플레이 권한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믿음, 즉 자기효능감을 반드시 수반하는가? 얼핏 생각하면 이는 맞는 이야기다. 플레이어는 게임이 정한 규칙 등 다양한 구성 요소와 상호작용하며 상황들을 마주하고 그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상호작용을 거부하는 플레이를 통해 자기효능감을 충전하는 플레이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트롤링(Trolling)이다. 트롤링은 공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게임이 금지한 행동을 플레이함으로써 플레이어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무시하고 반사회적 행동을 수행하는 플레이를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트롤링 중 하나가 <리그 오브 레전드>(라이엇 게임즈, 2009~)에서 종종 일어나는 ‘그리핑’(Griefing)이다. 그리핑이란 고의로 팀의 승리에 이바지하지 않는 플레이로, 그리핑의 동기는 다양하나 궁극적인 목적은 게임이 정해놓은 협력 시스템을 고의로 어겨서 자기만족, 즉 자기효능감을 취하는 것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가장 대표적인 그리핑 유형으로 뽑히는 ‘피딩’(Feeding)은 고의로 상대에게 죽임을 당해 팀의 패배를 견인하는 것이다. 혹 <리그 오브 레전드>가 협력 플레이라는 것을 근거로 피딩이 시위의 일종이 아닌가 싶은 추측도 분명 있을 텐데, 피딩은 그런 숭고한 사례가 없진 않겠으나(?), 대게는 그러한 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피딩을 하는 경우는 단순하다. 레벨업 혹은 승급이 필요하지 않은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의 성장을 막기 위해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피더(Feeder)들은 다른 플레이어의 성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전능감(Omnipotence)을 느끼게 되며, 이는 트롤링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획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닷 말해, 협력 시스템을 활용해 왠만한 실력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타인의 게임 구성에 직접 개입(Access)하는 데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고 있다는 감각이 자기효능감의 중핵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선형적 오픈 월드, 혹은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오픈 월드는 직접 게임 요소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듦으로써 플레이어에게 자기효능감을 수반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플레이어가 게임 요소에 직접 진입(Enter)할 수 있게만 한다면, 게임 요소에 개입(Access)한 것인가? <엘든 링>(프롬 소프트웨어, 2022)은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좋은 예다. <엘든 링>은 소울라이크 장르로서 튜토리얼부터 극악한 난이도의 미션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장르적 특징이다. 플레이어는 튜토리얼부터 차례대로 플레이 공략을 쌓아야만 엔딩에 이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난이도를 해결해나가는 성취감으로부터 자기효능감을 얻는다. 그러나 오픈 월드는 이러한 절차적 요소를 복잡하게 만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된다면 플레이어는 고난이도 캐릭터를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마주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절차적 요소의 핵심은 마디와 순서다. 어떤 진행에 있어 진행과 진행 사이가 구분되어 있고, 그 구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순서를 만들 수 있다면 절차로 볼 수 있는 정황이 충분하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마디와 순서에서 플레이어가 얻는 것은 예측과 기대이며, 플레이어는 이 예측과 기대를 바탕으로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엘든 링>이 오픈 월드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소울 라이크 팬들이 기대했던 것은 바로 이 진행과 진행 사이의 절차 구조상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특히 보스 콘텐츠까지 이르는 과정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 문제는 소울 라이크가 쌓아놓은 절차적 요소 자체가 워낙 단순하고, 그 단순함이 재미를 보장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엘든 링>에 있어 새로운 구조적 변화를 설계하기보단 비주얼 요소들에 집중했다. 그 결과, <엘든 링>은 충분히 잘 만든 게임임에도, 게임이 기획했던 바와 같이 오픈 월드를 플레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쉽지 않다. 물론, 보스까지 직통으로 연결되는 루트를 찾아 ‘길뚫 플레이’를 할 수 있지만, 이것이 게임 요소에 개입했다는 믿음을 주지는 않는다. 보스 콘텐츠라는 마디로 진입하는 것 자체가 <엘든 링>의 절차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마디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엘든 링>은 접근은 허락할지언정, 게임의 핵심적인 요소 자체에는 개입을 어느 정도 차단하는 일종의 절차적인 레벨 디자인을 꾸민 것과 같다. 이는 오픈 월드더라도 플레이어는 게임이 디자인한 특정한 순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과 같다. 오픈 월드라고 하더라도 플레이어와 레벨 디자인의 적극적인 상호작용, 그리고 플레이어의 온전한 주체성을 통해 게임 요소에 개입하여 얻어지는 자기효능감은 약한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플레이어에게 하지만 여기에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오픈 월드이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플레이했기 때문에 체험을 통해 습득한 서사는 비선형적이지만 꽤 괜찮은 세계관을 완결적으로 경험했다는 감각이다. <엘든 링>이 가진 독특하고 진중한 아트 디자인과 비주얼, 스테이지 간의 통일감과 앙상블이 세계관에 대한 플레이어의 체험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엘든 링>이 오픈 월드인 척하는 ‘반쪽짜리 오픈 월드’를 구현해놓았음에도 수많은 평론가가 <엘든 링>을 고티(GOTY, Game Of The Year)의 영역에 올려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이야기에서 하나의 완결된 세계관 체험을 통해 선형적인 서사로 경험되는 것은 흔치 않은 플레이다. 그리고 이러한 콘텐츠 체험은 무엇보다 소울 라이크 장르 팬이 아닌 장르 저관여 게이머도 유입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를 통해 <엘든 링>은 소울 라이크 장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 오픈 월드로서 선형적인 서사를 제공하는 <엘든 링>의 장점은 ‘디아블로’ 시리즈의 최신작 <디아블로 4>(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2023~)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디아블로 4>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가장 큰 장기인 압도적인 시네마틱 시퀀스를 통해 적절한 지점에 일종의 랜드마크를 세워놓는 효과를 본다. <디아블로 4>가 게임 내에서 보여준 핵앤슬래시 요소의 미성숙한 기술적 완성도와 많은 단점을 가진 게임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디아블로 4>의 시네마틱 시퀀스들은 레벨 디자인이 수행해야 하는 바로 그것,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정당화할 수 있는 요인을 마련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디아블로 4>의 시네마틱 시퀀스들이 오픈 월드의 요소를 마모시켰더라도,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지킨 것은 최소한 나에게는 <디아블로>를 속칭 ‘고인물 밭’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절치부심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디아블로M>이 던져놓았던 <디아블로> 시리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들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출시 5일 만에 글로벌 매출 6억6600만달러(약 8476억원)를 찍으며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역사상 최대 출시 판매액을 기록한 점은 그 반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사례들은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얻는 자기효능감이란 결국 반두라가 정의한 바와 같이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기대를 하게 한다. 게임의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구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특정한 요소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즐기게 만들기 위해 반드시 플레이어에게 모든 접근 혹은 개입 권한을 줄 필요가 없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게임에 있어 자기효능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건 어쩌면 플레이어에게 스스로 결정한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완성도 있는 세계관과 그 세계관을 구현한 게임의 명확한 존재 이유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레벨 디자인 너머에 있는 것 글을 열며 <리니지>를 언급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을 비판하는 건 대단히 복잡하고 힘든 일이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레벨 디자인은 게임사에서도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리니지 라이크’는 자기효능감과 거리가 먼, ‘착취적 BM’과 같은 악습으로 통한다. 나는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이 악습으로 받아들여 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더욱이 앞에서 밝혔든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엔씨소프트가 범해온 운영 권력의 남용을 호도하는 일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는 되물어야 할 것이다. 높은 수준의 레벨 디자인을 구현하고, 대체 불가능한 재미를 통해 플레이어를 게임 안에 가두리(Lock-In) 시키는 일은 또 다른 ‘착취적 BM’을 양산하는 바탕이 되는 것일까? 나는 게임에는 죄가 없다고 믿는다. 악습을 결정하는 것은 스튜디오와 디플로이어들의 선택이며 태도라고 생각한다. <엘든 링>이 소울 라이크를 재탕하지 않고 반쪽짜리라도 오픈 월드를 선택한 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디아블로M>보다 시네마틱 시퀀스를 우선시 한 점은 모두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는 일이다. 거기에는 게임을 사업 혹은 놀이 이상의 업(業)으로 대하는 태도가 있다. 이처럼 게임의 레벨 디자인을 완성하는 것은 레벨 디자인 그 자체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레벨 디자인의 궁극적 목적, 즉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스튜디의 선택이자 태도다. 그리고 한편으로 게임의 명확한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구하는 일은 플레이어에게 최선의 재미를 서비스하는 기본적인 책무를 넘어, 게임을 통해 플레이어의 플레이를 책임지겠다는 게임 개발의 윤리적 태도이기도 하다. 게임과 재미는 진지한 비즈니스다.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746898a6-9bc4-479f-bbe3-72156c2c26b5

2023.07.28

공백과 재난, 신카이 마코토의 세카이계에 대하여

공백에 기반한 세계, 세카이계 하즈마 히로키는 저서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에서 세카이계를 “주인공과 히로인을 중심으로 한 작은 관계성의 문제가 구체적인 중간과정 없이 세계의 위기와 같은 추상적이며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는 이야기를 묘사한 작품군”으로 정의한다. 적어도 아즈마 히로키에게 세카이계 장르의 특징은 원인과 결과 사이에 어떤 공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에서 세카이계를 정의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즈마 히로키가 제시한 ‘게임적 리얼리즘’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게임적 리얼리즘이 리얼리즘, 즉 사실주의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환기해보자. 그게 무엇이었든 간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하는 창작 태도, 바꿔 말해 어떤 것을 모방하려고 하는 미메시스(Mimesis)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게임적 리얼리즘이란 결국 필연적으로 현실과 강한 관계를 맺고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는 현실을 게임으로 파악하려는 시도와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현실을 게임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는 어떤 것인가? 아즈마 히로키는 일본 내에서 급성장한 서브컬쳐 혹은 오타쿠 문화가 사실주의를 굴절시키는 것을 넘어, 사실주의의 다른 차원을 열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관철시키기 위해 ‘게임적 리얼리즘’이 오스카 에이지의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의 맥락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에서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이 자연주의적 리얼리즘, 즉 전통적 리얼리즘과 대비되는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고 봤다. 그에 따르면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은 “사생한 현실(私生な現実)”에 기반을 둔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하즈마 히로키는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이 일본의 사소설에 바탕을 뒀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사소설(私小設)이란 작가가 ‘거의’ 허구를 섞지 않은 사생활을 이야기로 재현하는 일본의 독특한 소설 형식이다. 자전적 소설이 개인이 겪은 사건을 중심으로 둔다면, 사소설은 개인이 겪은 ‘심리’를 중심으로 둔다. 때문에 사소설은 사실(혹은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 나를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평가된다. 다만, 나를 쓰기 위해 사실들을 나열한 만큼 사소설은 사실들의 표본들을 자의적으로 편집하여 현실을 왜곡한 사실인 셈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바로 이 점이 “사생한 현실”에 기반을 둔 리얼리즘이며, 나(화자)에 의해 임의로 굴절된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다만, 아즈마 히로키는 “사생한 현실”은 가상에 바탕을 둔 세계라고 주장하는데, 오스카 에이지는 이에 동의하진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와 ‘게임적 리얼리즘’이 분기된다.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이 “사생한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개인적 표본들의 세계라면, ‘게임적 리얼리즘’은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이 표본화한 데이터들을 재편집한 세계다. 따라서 게임적 리얼리즘은 샘플에 대한 샘플링이자 시뮬라르크에 대한 시뮬라시옹에 가깝다. ‘게임적 리얼리즘’은 현실과 사실로부터 상당한 어긋남이 생겼으나 그 바탕이 사실이라는 점 자체는 변하지 않기에 리얼리즘의 사조에 속해 있는, 매우 독특하고 한정적인 리얼리즘인 셈이다. 문제는 그 어긋남에 있다. 가령, 우리는 세카이계의 시조라고 불리는 안노 히데야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보고 그 묵시적 세계가 사실이라고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린 신지가 느끼는 심리적인 압박과 고뇌가 사실적이라고 느끼는데, 여기서 사실적인 부분들은 대단히 무의식적이다. 따라서 비가시적이고 확인할 수 없으나 작품의 수용자가 작품 내 캐릭터와 어떤 연결과 맥락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지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그것은 왜 ‘사실’이 아니라 ‘사실적’이기만 한 것인지에 대한 탐구가 ‘게임적 리얼리즘’인 셈이다. 그러므로 사실은 아니되 사실적인 리얼리즘을 두고 우리는 ‘게임적 리얼리즘’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실인 것’과 ‘사실적인 것’을 우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게임적 리얼리즘은 사실의 표본에 대한 표본화를 이룬 사실주의로서, 사실과는 어긋남이 있다. 그 어긋남은 표본의 특징으로 인해 유발되는데, 표본이란 앙드레 바쟁이 「사진적 이미지의 존재론」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시간으로부터 유리된 성질의 것이다. 따라서 표본화되었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서 이탈했다는 것이며, 표본의 표본화는 시간 그 자체를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맨 처음 언급한 “공백의 문제”와 이어진다. 게임적 리얼리즘에서 현실과 표본을 이어줄 특정한 시간성을 찾아볼 수 없듯이, 세카이계 역시 특정한 맥락을 찾을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즈마 히로키는 그것을 탈역사적인 특징으로 묶어서 설명하는데, ‘구체적인 중간과정 없이 추상적이며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는 이야기’라는 정의가 바로 그것이다. 즉, 세카이계에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중간과정’이 없다는 점이다. 고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세카이계의 ‘묵시적인 분위기’ 혹은 ‘세기말’은 그저 표본을 표본화한 실체일 뿐이다. 신카이 마코토, 재난의 세카이계 세카이계 작가들 중 괄목할만한 성장과 성과를 이룩한 작가가 있다면, 당연 신카이 마코토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2016년 <너의 이름은.> 이후로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일본 내에서만 세 작품 연속(<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많은 대중들은 그가 <초속 5센티미터>(2007)에서 보여주었던 아련한 감성을 그의 강점으로 뽑고, 평단은 애도를 그의 가치로 언급한다. 여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가 다루는 주요한 서사가 상실을 바탕에 둔 이야기라는 점이다. 세카이계와 마찬가지로 그가 다루는 작품은 구체적인 중간 과정 없이 (혹은 적어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중간과정으로 인해) 인물들은 상실을 경험하고 그것을 극복하거나 수용한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다루는 세계가 재난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초기작 <별의 목소리>(2002)와 <초속 5센치미터>(2007)에서는 서로 이렇다 할 사건을 공유하지 않은 주인공과 히로인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로 상실을 경험하는 사적인 재난에 처한다. 주인공과 히로인이 그 상실을 극복하고, 자신이 처했던 재난에 대해 애도하는 과정 역시 구체적인 중간과정을 생략한다. 가령, <언어의 정원>(2013)에서는 주인공과 히로인은 구두와 발이라는 매개체 외에 어떠한 구체성도 공유하지 않지만, 그들은 서로의 감정과 교류에 관계없이 서로를 위로하는 데 성공한다. 심지어 <언어의 정원>에서는 서로 어떤 재난을 경험했는지조차 공유되지 않고, 관객에게도 주인공과 히로인의 사적인 재난에 대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어쨌든 발을 만졌다 / 발이 만져졌다 는 행위만으로 상실을 극복하기에 이른다. 이런 특징은 신카이 마코토가 한동안 포르노그래피적 구성을 시도하는 일차원적인 작가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여기에는 애니메이션 테크닉에 대한 찬사의 의미가 있었지만, 마치 포르노그래피와 같이 구체성을 띄고 있는 실체가 캐릭터의 형태·표정 등 작화에만 매몰되어 있어 작품 내적인 빈곤을 띄고 있다는 비아냥거림이기도 했다. 이런 평가가 뒤집히기 시작한 것은 출세작 <너의 이름은.>(2016)부터였는데, 그 배경에는 2011년 3월 11일 발생했던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다. <너의 이름은.>과 전작들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공적인 기억이 재난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었다. 전작들이 숙명적인 우연에 의해 발생한 개인의 사적인 재난을 다뤘다면, <너의 이름은.>에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우연이 집단적 재난의 풍경으로 발전되어가는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그 집단적 풍경이 구체적인 설명 없이 개인의 상실과 애도로 내면화되며 이어진다는 점에서 여전히 세카이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윤리적으로 재현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지는 이미지에 대한 훌륭한 우회로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과정이 없다는 점에서 재난을 지나치게 쉽게 판타지로 소비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직면해야 했으며, 이는 손쉽게 일차원적인 작가라는 평가로 귀결되었다. 이런 비판에 대한 신카이 마코토의 대답으로 볼 수 있을 만한 작품이 <날씨의 아이>(2019)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과 히로인은 여전히 재난의 중심에서 서로를 그리워하고, 재난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기 위해 분투한다. 하지만 <날씨의 아이>가 <너의 이름은.>보다 나아간 것이 있다면,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날씨의 아이>에서 주인공 ‘타키’는 히로인 ‘히나’를 구하는 대신 일본을 수몰시킨다. <날씨의 아이>는 ‘타키’가 어째서 세계를 버리고 ‘히나’를 구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도쿄와 세계의 수몰이라는 결과에는 ‘타키’의 구체적인 선택이 개입되어 있다. 여기에는 신카이 마코토의 이전 작들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전작들이 재난 이전의 세계를 구하기 위한 몸부림을 담은 판타지였다면, <날씨의 아이>는 세계가 폐허로 변하더라도 서사를 진전시키겠다는 구체적인 선택이 있다.  고르기아스의 매듭은 알렉산더의 칼을 꿈꾸는가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왜 하필 신카이 마코토의 인물들은 재난으로 엮여 있는가?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은 이에 대한 답을 얼핏 드러낸다. <스즈메의 문단속>의 중심에는 지진을 일으키는 영물 ‘히미즈’(日不見, ‘두더지’와 동일하다)가 등장한다. 히미즈는 의식과 의지가 없는 일종의 ‘현상’으로 오직 폐허에서 나타나며 오직 폐허의 행복했던 한때의 기억으로 저지되는데, 히미즈를 막는다고 하여 이미 폐허가 된 세계가 복구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주인공 ‘스즈메’와 히로인 ‘소타’가 히미즈를 저지한다고 하여 폐허가 된 세상이 구원을 얻진 않는다는 함의가 필연적으로 내재된다. 다만 한때 존재했던 그 풍경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또다른 폐허가 늘어나는 것은 상수일 것이다. 즉, 미래는 폐허라는 상수를 지닌 시간인 셈이다. 그러므로 미래는 모두를 위한다면 저지해야 하는 무언가이지만, 개인에게는 그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일 뿐이다. <날씨의 아이>와 <스즈메의 문단속>의 세계에는 폐허로 만들 것이냐, 아니냐는 선택이 동일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스즈메의 문단속>에는 등장하되 <날씨의 아이>에는 등장하지 않는 요소가 있다면, 바로 신(神)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신이란 소타가 진술하듯 “본질은 변덕”이다. 이는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에서 신이란 철저히 우연적 존재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작품의 클라이맥스에서 세계가 폐허로 변하지 않은 것은 신이 다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는 스즈메의 선택 등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길은 ‘신이 그렇게 결정했다’는 것 해명 외에는 없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신카이 마코토가 재난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재난이란, 결국 우리의 의지로는 선택할 수 없는 미래다. 그리고 상실을 불러일으키고 애도를 요구하는 사태다. 하지만 한편으로 재난은 (<날씨의 아이>에서 그러했듯) 새로운 룰을 정립할 수 있는 폐허를 제공하기도 한다. 폐허란 좋든 싫은 일종의 개간(Cultivate)된 평지인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기다림으로만 맞이할 수 있는 철저한 우연의 영역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신카이 마코토가 호평받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과포화된 정보의 시대를 넘어 과밀화된 맥락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가령, 연준은 끝없이 금리를 높이고 있지만, SVB가 파산하자 모든 예금을 보존하는 사실상의 구제 금융을 실행하여 유동성을 공급했다. 여기에는 포스트 코로나 이후의 가파른 인플레이션과 미국-서방세계와 중국-러시아의 신냉전, 2008년 리먼 사태에 대한 트라우마와 바이든 정부의 정치 공학적 계산 등 수많은 맥락이 고르기아스의 매듭 마냥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리고 그 매듭의 중심에는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복잡하고도 다단하며 지난하고 지겨운 계산이 있다. 쉽게 싹 다 밀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 지나온 세계를 완벽히 부정하고 공백의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그것이 신카이 마코토가, 나아가 세카이계가 제공하는 판타지는 아닐까. 혹은 고르기아스의 매듭은 남몰래 알렉산더의 칼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글·이현재 23.03.31 평론가,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연구원, STRABASE 객원연구원.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으로 등단했으며, 2021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 평론 신인상을 수상했다. 2022년부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정기간행물 「글로벌 게임 산업 트렌드」 필진으로 참여했으며, 경희대학교 한국문화콘텐츠 전공 박사과정생이다. 출처 :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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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스토리콘텐츠』제5호 발간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스토리콘텐츠》5호가 발간되었습니다. 《스토리콘텐츠》는 교보 스콜라를 통해 서비스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국내외 스토리콘텐츠 연구에서 의미있는 담론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07.31

[K 학술] 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4

[2024 봄 K - 콘텐츠와 아티스트 4] 5월 13일(월) : K-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1 <댓글부대> 참석자: 안국진 감독, 모더레이터 윤성은 평론가 일시: 5.13(월) 영화상영 18:30~20:30, GV 21:30까지 5월 20일(월) K-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2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참석자: 정지영 감독, 모더레이터 황영미 평론가 일시: 5.20(월) 영화상영 18:30~20:30 GV 21:30까지 5월 27일(월) K-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3 <당신이 잠든 사이> 참석자: 장윤현 감독, 모더레이터 유지나 평론가(동국대 교수) 일시: 5.27(월) 영화상영 18:30~20:30 GV 21:30까지 장소: 광화문[에무시네마] -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희궁 1가길 7 주최: 시네라처문화콘텐츠연구소 이름 및 연락처, 신청일자를 보내주세요. 신청: kln97@naver.com, 문의: 010-4165-4022 경희대 학생은 무료로 참여 가능합니다. 참가비: 1회당 15,000원, 총3회 패키지로 구매시 35,000원 (자료집과 영화상영 포함) 신청: 신한은행 110-445-085040 황영미(시네라 처), 문의 010-2673-4322 계좌로 입금 후 문자로 '입금자명/참가 날짜 알려주세요.
2024.04.15

학술저널『스토리콘텐츠』제4호 발간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가 발행하는 학술지 『스토리콘텐츠』 제4호가 발간되었습니다. 교보 스콜라를 통해 서비스 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4.01.29

[K 학술] 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3 신청

[2 0 2 3 겨울 K - 콘텐츠와 아티스트]접수중 • 11월 13일(월) : K-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1 주제: 영화감독을 말하다: 강제규, <1947 보스톤> 참석자: 강제규 감독, 모더레이터 황영미 평론가(시네라처 소장) 일시: 11.13(월)영화상영 18:00~20:00, GV 21:00까지 • 11월 27일(월) K-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2 주제: 영화감독을 말하다: 정지영, <소년들> 참석자: 정지영 감독, 모더레이터 전찬일 평론가 일시: 11.27(월) 영화상영18:00~20:00 GV 21:00까지 • 12월 11일(월) K-콘텐츠와 아티스트 시리즈 3 주제: 영화감독을 말하다: 김창훈, <화란> 참석자: 김창훈 감독, 모더레이터 황영미 평론가(시네라처 소장) 일시: 12.11(월) 영화상영 18:00~20:00 GV 21:00까지 • 장소: 광화문[에무시네마] -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희궁 1가길 7 • 주최: 시네라처문화콘텐츠연구소 • 참가비: 1회당 15,000원, 총3회 패키지로 구매시 35,000원 (자료집과 영화상영 포함) • 신청: 신한은행 110-445-085040 황영미(시네라 처), 문의 010-2673-4322 계좌로 입금 후 문자로 '입금자명/참가 날짜 알려주세요.
2023.11.04

[K 학술] 2023-2024년도 K-M00C 강좌 수강신청 안내

안녕하세요,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산하 K학술확산연구센터에서 2023-2024년도 K-M00C강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어국문학과 교수님들께서 참여하신 강좌들이 무료로 운영 중에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현재 수강 신청이 가능하니 관심 있는 학생들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일정 수강 신청: 2023년10월23일(월) ~ 2024년2월9일(금) 수강 기간: 2023년11월6일(월) 9:00 ~ 2024년2월9일(금) 23:30   ◆강좌 K-콘텐츠와 한류사(안숭범 외 3명)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10006?tm=20231023154039   스토리콘텐츠와 스타시스템(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임대근)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10005?tm=20231023154103   언어로 본 한국인의 문화유전자(조현용)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10003?tm=20231023154114   K-드라마로 배우는 한국어 의사소통의 기초(이정희)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10002?tm=20231023154124   한국 사상과 문화유산(신한대학교 교수 김태우)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10000?tm=20231023154314   역사와 함께 읽는 고전문학(차충환)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9999?tm=20231023154142   수용하는 대중, 향유하는 대중(한양대학교 교수 이재복)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9997?tm=20231023154201   세대로 보는 현대문학(서하진)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9994?tm=20231023154223   K-무비와 글로컬리즘(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백태현)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9993?tm=20231023154242   한국어의 역사-어원과 변화(김양진) https://new.kmooc.kr/view/course/detail/10001?tm=20231023154304   ◆수강 신청 방법 1) K-MOOC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 2)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검색 또는 연구소 K-MOOC 페이지로 이동 https://new.kmooc.kr/view/course/institution/kaep_khu 3) [수강신청하기]를 누르면 무료 수강신청 가능. 
2023.10.24

[특강] 컬처 트렌드 2024 콜로키움

2023년 11월 4일 토요일,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와 컬처코드 연구소 주최로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문과대학 101호에서 9:40분부터 <컬처 트렌드 2024 콜로키움>이 개최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웹툰, 대중음악 분야의 2023년을 정리하고, 2024년을 예측하는 유익한 시간이 될 예정입니다.
2023.10.13

[특강] 한류와 한국학 해외학자 특강 04 미국 한류와 한국학 개최 안내

미국의 한류와 한국학 - 특강 일정 1) "미국의 한류와 한국학" 강의(10:00-11:30) 강사:  오은영(Rice University 한국어 한국학 강의) 2) 질의응답(11:30-12:00) - 특강장소: ZOOM 실시간 회의 접속 - 특강일시: 2023년 9월 8일(금) 오전 10:00-12:00 - 대상: 한국어•한국학 관심자 - 문의: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02-961-0418 / kcsc@khu.ac.kr)   *포스터의 QR링크로도 접속이 가능합니다.   https://khu-ac.zoom.us/j/84889359609 - 주최: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K-컬처·스토리콘텐츠 연구소 - 주관: 국어국문학과 혁신과제사업단 - 후원: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09.06

[K학술] K-콘텐츠와 아티스트 2 신청

K-콘텐츠와 아티스트 2가 9월 19일(잠), 10월 10일(더 문)에 예정되어 있습니다.(경희대 학생은 무료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18:00-20:00 영화상영 ~21:00 감독 및 평론가(잠: 조혜정 / 더 문: 심영섭) GV 장소: 종로 에무시네마 신청방법: 이름 및 연락처, 신청일자를 tmzoqs@khu.ac.kr로 발송(잠은 9월 14일까지, 더 문은 10월 5일까지 신청 가능합니다.)
2023.09.06

2023년도 K-MOOC 강좌 운영

안녕하세요,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산하 K학술확산연구센터에서 2023년도 K-M00C 강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님들께서 참여하신 강좌들이 무료로 운영 중에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나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한국어 및 한국문화 전반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수강이 가능합니다. 현재 수강 신청하여 바로 강좌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일정

수강 신청: 2023년 7월 27일(목) 09:00 ~ 2023년 10월 31일(화) 23:30 수강 기간: 2023년 8월 7일(월) 9:00 ~ 2023년 10월 31일(화) 23:30

◆ 강좌

K-pop 노랫말과 사회적 담론(김태룡) http://www.kmooc.kr/courses/course-v1:KAEP_KHU+KKHU09+2022_T2/about 재미있는 한국어 표기법 이야기(김양진) http://www.kmooc.kr/courses/course-v1:KAEP_KHU+KKHU02+2022_T2/about 키워드로 읽는 대중문화사(안숭범) http://www.kmooc.kr/courses/course-v1:KAEP_KHU+KKHU03+2022_T2/about 키워드로 읽는 현대 문학(서하진) http://www.kmooc.kr/courses/course-v1:KAEP_KHU+KKHU07+2022_T2/about 한국 노래와 이야기의 원형(차충환) http://www.kmooc.kr/courses/course-v1:KAEP_KHU+KKHU04+2022_T2/about 한국문화의 토대와 가치(장문석) http://www.kmooc.kr/courses/course-v1:KAEP_KHU+KKHU01+2022_T2/about 한국서사와 컬처매핑(김세익) http://www.kmooc.kr/courses/course-v1:KAEP_KHU+KKHU10+2022_T2/about 한국어 속의 문화 탐색(김중섭) http://www.kmooc.kr/courses/course-v1:KAEP_KHU+KKHU08+2022_T2/about 한국어 의사소통 입문(이정희) http://www.kmooc.kr/courses/course-v1:KAEP_KHU+KKHU05+2022_T2/about 한국의 문화원형(이정재) http://www.kmooc.kr/courses/course-v1:KAEP_KHU+KKHU06+2022_T2/about

◆ 수강 신청 방법

1) K-MOOC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  2) 홈페이지 맨 위 [분류 탐색]에서 원하는 강좌명을 직접 입력하거나 위 링크주소를 클릭하면 해당 강좌로 바로 연결 3) [수강신청하기]를 누르면 무료 수강신청 가능 4) [분류 탐색]에 ‘경희대학교 K학술확산연구소’를 입력하면 현재 수강 가능한 10개 강좌 모두 확인 가능
2023.08.12

학술저널『스토리콘텐츠』제3호 발간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가 발행하는 학술지 『스토리콘텐츠』 제3호가 발간되었습니다. 교보 스콜라를 통해 서비스 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3.07.27

[특강] 한류와 한국학 해외학자 특강 03 이집트 한류 문화와 한국학 개최 안내

오는 2023년 3월 31일 금요일에 '한류와 한국학 해외학자 특강 시리즈'의  번째로 "이집트 한류 문화와 한국학" 특강이 개최됩니다. ZOOM 비대면 플랫폼으로 개최되는 이번 특강에는 아인샴스대학교의 사라 벤자민 교수님을 모시고 한류와 한국학에 관한 이집트 내 현황에 관해 짚어봅니다.  =특강일정= 1) "이집트 한류 문화와 한국학" 강의(18:00-19:00) 강사:  사라 벤자민(Ain Shams University 부교수) 2) 질의응답(19:00-19:30) - 특강장소: ZOOM 실시간 회의 접속 - 특강일시: 2023년 3월 31일(금) 18:00-19:30 - 대상: 한류와 한국학에 관심있는 경희대학교 구성원 누구나 - 참여 방법: QR코드를 통한 줌 접속 - 주최: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K-컬처·스토리콘텐츠 연구소 - 주관: 국어국문학과 혁신과제사업단 - 후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류와 K-콘텐츠의 확산에 대해 관심이 있는 학부생과 대학원생, 연구자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2023.03.30

[특강] 한류와 한국학 해외학자 특강 02 인도의 한류와 한국학 개최 안내

오는 2023년 2월 24일 금요일에 '한류와 한국학 해외학자 특강 시리즈'의 두 번째로 "인도의 한류와 한국학" 특강이 개최됩니다. ZOOM 비대면 플랫폼으로 개최되는 이번 특강에는 자와할랄네루대학교의 니르자 사마즈달 교수님과 마니푸르대학교의 이현경 교수님을 모시고 한류와 한국학에 관한 인도 내 현황에 관해 짚어봅니다.  =특강일정= 1) "인도의 한류와 한국학" 강의(14:00-15:30) 강사:  니르자 사마즈달(Jawaharlal Nehru University 부교수) 이현경(Manipur University 객원교수) 2) 질의응답(15:30-16:00) - 특강장소: ZOOM 실시간 회의 접속 - 특강일시: 2023년 2월 24일(금) 14:00-16:00 - 대상: 한류와 한국학에 관심있는 경희대학교 구성원 누구나 - 참여 신청 및 문의: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02-961-0418 / tmzoqls@khu.ac.kr)   *해당 메일로 참여 의사를 밝힌 학생에게 ZOOM 링크를 전달드립니다. - 주최: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K-컬처·스토리콘텐츠 연구소 - 주관: 국어국문학과 혁신과제사업단 - 후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류와 K-콘텐츠의 확산에 대해 관심이 있는 학부생과 대학원생, 연구자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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